2014.08.14 11:50

[2014 Nemaf] 51+ 관객과의 대화_파티51+ 재개발에 의한 홍대앞 인디음악 생존기

 

 

8월8일에 산울림 소극장에서 영화 51+ GT(관객과의대화) 가 있었습니다.

 

Q.영화를 보면 굉장히 세밀한 감정이나 사건에 대해서 잘 잡아낸 것 같아 보인다. 그렇게 촬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A.정용택 감독(이하 정) : 홍대 근처에서 살고 있다. 지리적 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밀착해서 촬영할 수 있었다. 덕분에 촬영분량이 많이 나왔다. 촬영만 3년 넘게 했고 직접 촬영한 것 말고 자료들까지 다 합치면 1시간짜리 테이프 600개 이상 이었다. 편집하는 데도 오래 걸리고, 자료를 다 보는 데만 6개월 이상 걸렸다.

 

Q.촬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A. : 두리반 식당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연남동에 살고 있었다. 2010년도쯤에 당시 오세훈 시장이 차이나타운을 만들겠다고 재개발을 하겠다고 말해서 내가 사는 일대가 철거가 되지 않을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때 두리반이란 곳을 신문에서도 보고 지나다니면서도 봤다. 글을 쓰신 것도 보고 두리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료 조사 중에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던 한받씨가 그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단 소식을 듣고 가서 첫 촬영을 하게 되었다.

 

Q. 홍대 쪽 재개발에 관련해서 물러설 수도 있었을 텐데 두리반 같은 경우에 목소리도 크게 내셨다. 덕분에 두리반이 홍대 앞에 있는 어떤 상인 분들의 입장을 대변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끝까지 농성하게 된 이유는?

A.안종녀 사장(이하 안) :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올리기 위해서 상인들에게 높은 월세나 보증금을 요구했다. 거기다 마포구청에서 재개발을 시작하면서 세입자들에게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재건축으로 상인들을 쫓아내고 강제집행을 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자존감까지도 완전히 떨어졌다. 우리는 그렇게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에 저항을 시작했다. 이렇게 일이 크게 될 줄은 저희(두리반을 운영하는 부부)도 몰랐다. 뮤지션들이 와서 음악을 하게 되면서 비폭력적이고 예술적인 방법으로 싸웠고, 결국 이기게 될 줄은 몰랐다.

 

Q. 자립음악가들이 두리반에 대해 알게 된 계기와 합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박다함 조연출(이하 박) : 저 같은 경우는 2010년에 처음 가게 되었다. 사실 한받씨가 공연한다는 포스터를 봤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음악회를 계속 한다는 것을 보고 4번째때 같이 참여하겠다. 이야기를 했고 한받씨와 같이 고민하고 있던 상황들. 이를테면 재개발 문제와 가난한 인디뮤지션들이 홍대에서 공연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사실 저희는 음악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한 것뿐이다.

 

Q. 기존에 있는 인디밴드와 자립음악의 차이는?

A. : 인디음악이 유명해지면 인디보다 더 매니악한 장르를 공연하던 공연장도 많이 사라졌다. 게다가 홍대 지역의 임대료가 너무나 비싸져서 임대료를 낼 수 있는 공연장들만 살아남았고 티켓파워가 있는 가수들만 공연장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자본으로부터의 자립을 선언하는 가수들이 자립음악가이다. 그러나 명확한 구분은 지을 수 없고 다만 시기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Q.인디밴드들이 음악을 하겠다고 농성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들과 농성을 함께 하면서 두리반 사장님 내외분들의 변화도 보인다. 그때 가지고 있던 느낌은 무엇이었나요?

A. : 가게에 쫓겨나고 농성을 시작했을 때 인디음악 사실 전 하나도 몰랐다. 기획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었다. 두리반이라는 장소에서 인디음악가들과 그들의 팬의 유대가 커졌기 때문에 용역들이 함부로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Q.영화 중간 눈물을 흘리는 사장님의 모습을 봤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으셨던 적은 없으셨나요?

A. :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끝까지 버틸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자립음악가 여러분들께서 함께 싸워주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두리반에 방문해주셨고 우리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셨다. 우리도 그분들의 노력에 부응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었고, 더욱 힘을 얻어서 끝까지 싸울 수 있었던 것 같다.

 

Q.명동이나 정치적인 공연에 대한 섭외가 들어왔는데 뮤지션들의 태도가 두리반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들과 두리반의 차이는 무엇이었는가?

A. : 두리반이 끝나고 나서 두리반 말고도 다른 철거현장이 있으니 제2의 두리반을 만들자는 생각을 가지고 함께했던 음악가들과 젊은 애들이 많이 갔었다. 홍대에 있던 두리반과는 달리 거리가 있어서 일상적으로 상주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오랫동안 그런 농성을 함께 하다 보니 피로감이나 매너리즘 같은 게 좀 있었다. 두리반은 아티스트들이 공연할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찾은 장소였다. 그러나 정치적인 행사들은 비자발적인 행사다 보니 의도치 않은 상황도 생겼고, 조합원들 간의 의견충돌이 발생했다.

 

Q.왜 예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속 소외가 될까? 현대사회는 예술인들의 노동력의 대가가 적게 측정되는 사회이다. 부분에 대한 변화를 가지려면 어떻게 변화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A. : 저희가 사실 자립이라는 말을 계속 하는데, 우리도 합리적인 방향을 찾아가기 위해서 계속해서 시도 중이다. 적게 벌어서 적게 산다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음악 자체가 무리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출이 10이있으면 가능한 예산 범위 안에서 작업하는 게 맞고 다시 채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Q.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해 주세요.

A. : 51+가 극장에 개봉을 하려면 홍보마케팅 비용이 필요한데 그걸 마련하지 못해서 개봉 못하고 사라질 상황에 처했었다. 그런데 다행히 최근에 영화진흥위원회의 개봉지원금을 받아서 12월 달에 극장개봉을 할 예정이다. 그간 다른 촬영이나 편집이 너무 오래 걸리다 보니 세간의 관심에서 꽤 멀어졌었는데 다시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오신 관객 분들께서 주변에 많이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글 뉴미디어루키 김성경 전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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