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해머 회고전 강연회 - 4강
레즈비언 시네마의 거장 바바라 해머
레즈비언 시네마의 거장, 바바라 해머
레즈비언 시네마의 거장이라 불리는 바바라 해머, 그녀는 그저 영화에 관한 작업만 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작품을 통해 레즈비어니즘, 레즈비언 운동의 방향 모색, 레즈비언 작가의 작품 발굴 등,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사회 현상을 전반적으로 다루었다. <바비의 일생:Tender Fiction>을 통해 바바라 해머는 처음 ‘레즈비언’이란 단어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70년대 쯤 여성주의를 접하며 레즈비언이란 단어를 알 게 되었고, 그 가운데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며 자신이 작품을 통해 텍스트 화 하고자 했던 컨텐츠들의 방향이 많이 달라졌다. 한 번은 그녀의 1974년 작 <레즈비언 사랑의 기술:Dyke Tactics>, 이 작업에 관해 “어떻게 그런 유토피아 같은 환경에서 유토피아 같은 영상을 찍을 수 있었는가?” 하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기존의 페미니즘 영화나 영상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영상이었는데, 바바라 해머는 그저 아는 친구들과 뒷동산에 올라가 찍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원래 60분가량의 영상을 만들려고 했는데 영상미와 여러 가지를 고려하며 자르고 자르다 보니 <레즈비언 사랑의 기술:Dyke Tactics>는 결국 4분이란 러닝타임으로 선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바바라 해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고민과 혼란스러움을 내보이는 작업들이 쉽게 보이진 않는다. 여성영화를 보면 주로 각 감독의 첫 작품에서는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 혹은 억압의 기제 등등을 내보이고자 하는 시도들이 많은데, 바바라 해머는 첫 작업부터 마지막 작업까지 이성애중심적인 사회나 가부장제를 비난하거나 폭로하고자 하는 그러한 형식이 아니라, 항상 작품의 중심을 퀴어나 레즈비어니즘 등에 두고 있다. 중점을 두는 방식이 다른 작가와는 다소 다르다. 분명 소수자적인 관점을 담아내지만 비난이나 분노의 영상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더욱 주체화하여, 어떻게 하면 레즈비언의 메시지를 잘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중점을 두고는 한다. 이런 모습들이 전반적으로 바바라 해머가 재현하고자 하는 작품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 바바라 해머는 거의 모든 자신의 작품에 등장한다. 자신을 레즈비언, 여성, 예술가로 정체화 하는 바바라 해머. 그녀의 초기 작업부터 가장 최근의 작업까지를 모두 지켜보면, 한 번도 이러한 키워드와 이에 관한 장치들이 떼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영화에는 관객, 감독, 등장하는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가 응시하는 대상이 있다. 바바라 해머는 거의 항상 캐릭터로 등장해 인물이 되고 또 감독을 하며, 그 가운데 또 캐릭터가 응시하고자 하는 대상(레즈비언, 여성, 예술가)이 된다. <말이 아닌 은유:A Horse Is Not A Metaphor>를 예로 들어보면 말과 바바라 해머가 등장함으로 이것들이 끊임없이 겹치게 되어 일치된다. 영화라는 매체는 애당초 그 시초부터 이성애자 남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만들어져가는 것이었다. 그런 ‘주류적인’ 시선과 응시하고자 하는 대상 등을 바바라 해머가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며, 이 응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관해 다른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을 거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시각 미술에서도 여성의 누드를 그리고자 한다면 그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관객은 늘 이성애자 남성이다. 바바라 해머는 이를 알고 끊임없이 작품 속에서 감독이자, 관객이 되고, 캐릭터가 되고 또 대상이 되어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며 이성애자 남성 중심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Herstory
바바라 해머의 작업은 크게 네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1970년대, 레즈비언의 섹슈얼리티와 몸의 재현 - 1974년부터 1978년까지 네 편의 영화를 제작하며(<레즈비언 에로티카:Lesbian Erotica>_ 레즈비언 사랑의 기술:Dyke Tactics, 1974/내가 사랑하는 여인들:Women I Love, 1976/멀티플 오르가즘:Multiple Orgasm, 1977/이중 강도:Double Strength, 1978) 가장 치중 했던 부분이다. 네 편의 영화를 통해 레즈비언의 섹슈얼리티와 여성의 신체를 가장 많이 장면화 하였으며, 장면화를 통해 이를 재현하고 가시화하고자 했던 시기이다.
2. 1980년대, 미디어와 나르시즘 - 80년대에 들어서는 미디어와 자신의 몸을 일치화 시키고자하는 작업을 주로 하였다. 이 때 미국에서 비디오아트가 성행하며 여성주의 비디오아트 역시 붐을 일으켰다. 이 때 미국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미디어아트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작품, 작가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몇몇 여성주의 작가의 작품은 남성 예술가의 작품 못지않은 가격으로 팔리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비디오 문화 가운데 바바라 해머도 비디오 그래픽과 이미지 프로세싱적인 요소를 가지고 많은 실험을 했다. 이 시기에 또 유행했던 것이 바로 비디오 퍼포먼스인데, 이것 역시 몸과 비디오가 일치되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비디오와 여성의 몸이 일치되어 어떠한 텍스트/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인가, 또 어떻게 관객에게 보여줄 것인가에 관한 고민과 시도가 많았던 것이 바로 1980년대이고, 비디오나 디지털적인 속성들을 많이 담은 것이 이 시기의 특성들이다. 그 작업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의 몸에 텍스트를 붙이고, 이미지를 붙여 꼴라쥬를 만든 그녀의 1989년 작품 <텔레비전 파이:TV Tart>다.
3. 1990년대, 다큐멘터리 - 이 시기의 작업들이 가장 성과가 있었고, 수상도 많이 하였으며, 또 여성영화제에서 상영이 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작업을 논하기에 앞서, 한국에서는 영화와 미술을 분리하여 감상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 양 장르간의 교류가 잘 없는데 미국은 아방가르드 영화, 사운드 아트 등 상이한 분야 간의 교류가 많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영화적인 면으로만 바바라 해머의 작품을 읽으면 아무래도 한계가 있고, 시각예술적인 측면에서도 연결을 시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스토리 위주로 해석하게 된 것은 소설의 극화를 핵심역량으로 두었던 헐리우드 시스템의 영향이 아닌가 싶은데, 이를 계기로 예술적인 영화는 모두 ‘비주류’로 배제되고 스토리 위주의 영화가 지금의 주류 영화가 된 것이다. 다시 돌아와 회화를 예로 들자면, 그림 안에 상당히 많은 텍스트가 녹아있기 때문에 그 텍스트들을 해석을 해야 그 회화를 읽을 수 있을 수 있듯이, 바바라 해머의 영화 역시 영화의 극적인 측면으로만 읽으면 화면 안에 다양한 텍스트들의 해석체들을 놓치게 된다. 또 바바라 해머는 영화를 종합예술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화면과 더불어 사운드에 녹아있는 텍스트를 읽는 것도 중요하다.
7-80년대가 주로 화면에 텍스트를 삽입한 시기였다면, 90년대는 전반적으로 다소 추상적인 다큐멘터리를 많이 제작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에세이 다큐멘터리’라 소개하고, 또 관객들이 그렇게 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얘기 한다. 바바라 해머는 이 시기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역사의 재구성/레즈비언 예술가의 가시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다큐멘터리 삼부작을 통해 추적<질산염 키스:Nitrate Kiss>/구술<바비의 일생:Tender Fiction>/재전유<역사수업:History Lessons>의 방식으로 기존의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역사의 시선을 배제하여 역사를 재구성 하고자 하였고, 레즈비언 인물의 자서전을 영화 형식으로 제작하여 가시화를 이루고자 하였다. <여성의 옷장:The Female Closet>, <연인, 타인:Lover Other> 이 두 작품이 레즈비언 인물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인데, 이 두 작품의 특징은 죽어있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말하게 하는 것이다. 바바라 해머의 입장에서 제 3자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로 삼고 있는 인물들이 직접 ‘나는 이랬었지.’하는 형식으로, 1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자신의 역사를 구술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이렇게 추적, 구술, 자서전 등 여러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냈지만 90년대는 전체적으로는 레즈비언 역사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관한 의제를 가지고 작업을 했던 시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4. 2000년 후, 레즈비어니즘의 관점으로 본 세계관 - 바바라 해머가 90년대까지 레즈비언/퀴어의 역사에 주로 치중했다면,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공표했기 때문에 주로 레즈비언/여성이 바라본 ‘세상’을 주로 담아냈던 것 같다. <제주도 해녀:Diving Women Of JeJu-Do> 라던가, <아웃 인 남아프리카:Out In South Africa>, <저항하는 파라다이스:Resisting Paradise> 등을 보면 전혀 레즈비언이 아닌 인물을 담기도 한다. 이런 것에 많이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전반적인 주제가 레즈비언과 그 역사를 담는 것에서 레즈비어니즘이라는 관점으로 바라 본 세상이 어떤가를 담아내는 것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