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바바라 해머 회고전 강연회 - 4강
레즈비언 시네마의 거장 바바라 해머


김 연 호  (미디어극장 아이공 대표)

2010년 1월 22일 / 미디어극장 아이공 


이전 내용으로 가려면 클릭 1/3

추상의 정치학


바바라 해머는 자신의 레즈비어니즘 영화에 관해 ‘추상의 정치학’이라 정의하고는 한다. 자신의 작품이 왜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것이 많은 지를 자주 얘기하는데, 레즈비어니즘에 대한 투철한 작가정신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이성애자 남성들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로는 담아내기 싫어서 일 것이다. 그녀는 레즈비언의 소수자의 영상 언어를 만들어내고자 40년 간 노력했다.


그녀는 1940년대에 활동했던 마야 데렌과 트린 T 민하, 이 둘을 상당히 좋아하고 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잠깐 소개하자면, 미국에선 유럽 중심의 아방가르드가 많이 성행했었는데 마야 데렌이 미국식 아방가르드의 필요성, 방향성을 제시했다. 마야 데렌은 상당히 여성주의적인 관점으로, 극영화는 만들지 않고 실험영화를 많이 만들어냈다. 댄스필름을 개념화 하여 댄스필름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이런 그녀를 기려 대안영화나 실험영화 등 선구자적인 형식을 시도하는 작가들에게 주는 마야 데렌 상이 있기도 하다. 그 상을 트린 T 민하도 꽤 여러 번 수상하였다. 필름을 긁고, 녹이고, 자르고, 색칠하는 등, 필름을 캔버스 삼아 다양한 실험을 했던 작가 스탠리 브랙퀴지. 이 분의 작품도 상당히 추상적 다큐멘터리의 모습들이 보이는데, 바바라 해머가 미국식 실험영화의 영향도 다소 받았다 생각한다.


바바라 해머의 추상의 정치학, 그녀가 사용하는 형식적 측면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퀴어 학자들이 만들어낸 권력을 드러내는 문구들을 상당히 많이 활용한 텍스트, 포토 몽타주의 형식을 많이 빌린 영상, 구술적 재현을 많이 사용한 사운드, 이렇게 세 가지다. 여기서 포토 몽타주를 moving montage라고 얘기해도 좋을 것 같다. 포토 몽타주란 기존의 것을 다른 것으로 구성을 하는 방식으로, 산을 그리는데 철근 사진으로 구성을 한다던가, 사람 사진을 붙인다던가 하는 것이다. 기존의 문화 생산물을 재구성해서 새로운 문화로 전복하는 것, 대안문화로 전복하는 것으로 한나 호흐가 여러 작업으로 유명하다. 바바라 해머의 다큐멘터리 삼부작에서도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영상 안에서 많은 무빙 몽타주를 하려고 했던 시도들이 보인다.


바바라 해머를 제외한 페미니즘 비디오 엑티비스트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바바라 해머 같은 거장은 많이 없지만 슈리칭, 샤디 베닝, 일본의 데즈리림, 홍콩의 앨런 포우 등의 레즈비언 액티비스트들이 있다. 레즈비언이지만 레즈비어니즘의 소재를 쓰지 않는 샹탈 아커만, 1980년대에 주로 활동하고 여성 정신분석으로 유명한 줄리 잔도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아이공에서도 많이 소개를 했었고 할 예정이니 참고 바란다.


이번 기획 기간에 걸쳐 바바라 해머의 여러 작품을 소개했었는데 개인적으로도 그녀에게 많은 에너지를 얻은 것 같다. 이를 계기로 보다 큰 차원에서도 많은 생명력을 얻고, 역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본 강연문은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주최한 <바바라 해머 회고전>과 더불어 기획된 것으로 공유하고자 블로그에 올립니다. 옮기실 때에는 트랙백을 달아주시고,  이용하실 때에는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강좌'임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바바라 해머 회고전 강연회 - 4강
레즈비언 시네마의 거장 바바라 해머


김 연 호  (미디어극장 아이공 대표)

2010년 1월 22일 / 미디어극장 아이공 



여성의 몸

 

바바라 해머의 작품엔 여성의 나체가 자주 장면화 되는데 왜 그렇게 벗은 여성의 몸, 벗은 레즈비언의 몸이 나오는지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문제는 ‘몸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몸이라는 것은 자연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회/문화/배경/관습 등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몸이라는 것은 가장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이기에 여성들이 몸을 통해 가장 쉽게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고, 실제 7-80년대에 페미니즘에서 가장 많이 다루었던 것이 몸의 투쟁이기도 하다. 동시에 ‘섹슈얼리티라는 것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기에, 사회적으로 구성 된 것을 지워내는 작업만이 여성/남성의 계급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다.’ 등의 담론이 가장 많이 나온 시기가 197-80년대이기도 하다. 바바라 해머는 1970년대에 여성의 몸에 덧씌워진 문화, 강요 등을 지우고 여성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어떻게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내비칠 수 있을까 고민하였던 것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자동화 되고 습관화 되어 버리는 몸의 규제들을 어떻게 ‘나’, ‘자아’로 만들고 생성할 것인가에 관해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란 말이 있듯이, 그녀는 각 개개인이 갖고 있는 몸에 관한 얘기를 한 것이다. 몸에 관한 차별의 흔적들을 가시화 하고,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관한노력이 많이 보이는 시기이다. 흑인 여성주의자 벨 훅스가 흑인의 소수성에 대해 함께 투쟁하지 않는 백인 여성의 문제에 관해 ‘나는 보이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다’라고 비가시화의 문제를 얘기하였듯이, 바바라 해머 역시 여성이라는 집단 내에서 레즈비언으로서 가시화되지 않는 문제를 몸을 통해 투쟁하고자 했던 것 같다.


여성의 몸에 관한 담론이 나올 때 또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몸’과 여성성의 관계라 생각한다. 전에 한 책에서- 이성애자 남성이 여성의 몸을 보는 관점과 레즈비언 여성이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관점의 ‘응시’를 어떤 차이로 봐야하는가? 하는 질문을 본 적이 있다. 그 질문을 보며 바바라 해머의 작품을 어떤 (다른) 관점으로 볼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클리토리스와 자신의 얼굴이 이중화되어 나오는 영상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러한 것이 기존 남성의 레즈비언 포르노와, 섹슈얼리티 영화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시점에서 필요한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중 나왔던 한 얘기가 <문화적 맥락으로서의 몸>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 것인가에 관한 것인데, 몸을 통해 어떻게 ‘다른 몸’의 투쟁이 나오는 가를 볼 수 있다. 이에 관해선 바바라 해머가 자주 다뤘던 주제이기도 한 퍼포먼스(공연)와 보디빌딩이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퍼포먼스와 보디빌딩 이 두 가지는 기존의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의 몸을 전혀 다르게 구성한다. 퍼포먼스에 관해 아네스 쿤이 척하기, 역할 맡기, 연기하기 이렇게 세 가지 개념을 이야기 하였다. 바바라 해머 역시 이러한 맥락으로 덧씌워진 몸으로 계속 새로운 ‘문화’를 갈아입으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또 보이고자 하였다. <질산염키스:Nitrate Kisses>에 이 세 가지 요소가 가장 많이 들어 간 것 같은데, 척하기의 예로 <질산염키스:Nitrate Kisses>에서 키스하는 두 노인은 친구 사이로 연인인 ‘척’을 하고, 역할을 맡고 연기를 한 것이다. 또 <연인, 타인>의 예를 들더라도, 클로드 커훈이 가장 많이 하는 것이 ‘남장’이다. 남자인 척을 하고 남자의 역할을 맡고 남자를 연기 해 보는 것, 남성이 만들어 낸 문화적인 여성을 벗어내는 작업을 통해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여성의 사회적인 몸을 어떻게 벗을 수 있는가에 관해 바바라 해머는 끊임없이 연구하였고 시도하였다.


보디빌딩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근육과 주름, 이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근육이 있는 여성은 사회적으로 여성의 몸을 구성하는 ‘부드러움’을 갖고 있지 않다. 보디빌딩의 경우는 자신의 몸에 근육을 ‘새기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새김’을 통해 사회적으로 만들어냈던 여성의 몸을 지우는 작업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근육=남성 이라고들 많이 이야기하는데 근육의 몸을 여성의 몸에 새기면서 또 다른 여성이 생산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몸에 근육이 생기면 사회는 위협하는 것이며 그 요소가 젠더의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주름도 하나의 보디빌딩 같은 요소라고 생각한다. 주름은 세월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자연적으로 몸에 새겨지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성의 주름은 위엄이고 나이 든 남성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반면, 여성의 주름은 ‘혐오’다. 나이 든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고도 얘기하며, 심지어 베트남 속담 중 ‘여자는 나이가 들면 원숭이다.’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즉, 주름이 있는 여성/나이 든 여성은 사회적으로 칭하는 여성이 아닌 것이다. 혐오의 대상이 아닌 주름을 사회적인 문화로 생산하고자 바바라 해머는 여러 작품을 통해 주름에 새겨진 자신의 세월을 ‘혐오’가 아닌 역사를 존중으로 재전유하고자 노력하였다.



질의응답


80년대에 많은 작가들이 여성의 몸을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보자고 얘기 했던 것 같은데, 거기에 상업적인 가치가 더해져 지금은 남성적인 성적 욕망을 다른 방향으로 채우는 것으로 전락된 것 같기도 하다. 현재는 여성의 몸이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지?


많이들 여성의 누드를 그려왔고 그 가운데 응시의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응시’는 학습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원’이라는 작품을 보면 엉덩이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모두들 여성의 엉덩이라 생각하고 섹슈얼리티적인 측면을 떠올리게 되는데, 실상 그 화면에 나오는 엉덩이는 모두 나이 많은 남성의 엉덩이다. 이러한 예만 보더라도 응시라는 것이 얼마나 학습된 것인지를 알 수 있고, 다르게 바라보는 ‘눈짓’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혹은 어떠한 관점으로 보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성적인 욕망이 깔려있는 ‘응시(gaze)’로 볼 것인가, 아니면 ‘눈짓’으로 볼 것인가가 고려해볼만한 문제라 생각한다. 여성주의 작가들은 ‘눈짓(glance)’ 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메시지의 작품을 많이 냈다. 남성적인 응시, 응시적인 시선들에 지금까지 익숙해져 왔지만 여성적인 재현, 여성주의 적인 시각으로(눈짓으로) 살펴보자 하는 주장들이 있다.


성적인 재현물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이성애자 여성이라 할 수 있다. 성적인 에너지는 분출되기 마련이고 이성애자 남성은 성적인 에너지를 분출할 공간이 상당히 많다. 그런 반면 이성애자 여성은 성적 에너지를 분출할 곳이 없고 심지어 ‘관점’마저도 상당히 억압되어 있다. 이성애자 남성을 위한 성적 재현물은 상당히 많은데 이성애자 여성을 위한 성적 재현물은 거의 전무하며, 또 이것을 표현하는 즉시 사회적인 ‘마녀’로 찍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레즈비언은 사회적으로 남성 가부장제와 이성애 중심주의 이 두 가지 면에서 이탈 된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비-퀴어가 가지고 있는 부분에 관해 퀴어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는 것이다. 남성가부장제에서는 남성이 권력자/지배자인 것이고, 이성애중심주의에서는 이성애자가 권력자/지배자이다. 이 두 가지 모두에 속하지 않는 것이 레즈비언이다. 그래서 사회적인 재현의 질서들을 쉽게 캐치해낼 수 있는 것이며, 문화적인 귀속감, 계급적 부조리 등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예해방 때도 흑인의 관점이 있었기에 그 부조리함을 알고 운동이 있어 흑인 참정권이 생기게 된 것이고, 여성주의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것도 레즈비언 여성에 의해서였다.


제주도 해녀를 레즈비어니즘 세계관을 통해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어떤 맥락으로 레즈비언의 세계관인지 궁금하다.


바바라 해머가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관광 책자를 보며 두 가지 이유에서 제주도 해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해녀들이 상당히 나이가 들었고, 그러므로 전통이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여성의 문화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관한 점이었을 거고, 또 하나는 여성이 장기간 여성이 하기 쉽지 않은 강도 높은 노동을 해왔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바바라 해머도 난소암에 걸려 치유 중인데 이에 대한 두려움이 살짝 있지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레즈비언 시네마를 만드는 사람이 별로 없는 상황이다. 한 번은 남성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업이나 영화를 폄하하고 매장할까봐 느꼈던 두려움이 자신으로 하여 80편이라는 수의 작품을 만들게 한 것 같다고 얘기했던 적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어찌 보면 자신의 상황과 유사한 제주도 해녀를 한 번 살펴보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본 강연문은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주최한 <바바라 해머 회고전>과 더불어 기획된 것으로 공유하고자 블로그에 올립니다. 옮기실 때에는 트랙백을 달아주시고,  이용하실 때에는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강좌'임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바바라 해머 회고전 강연회 - 4강
레즈비언 시네마의 거장 바바라 해머


김 연 호  (미디어극장 아이공 대표)

2010년 1월 22일 / 미디어극장 아이공 



레즈비언 시네마의 거장, 바바라 해머


레즈비언 시네마의 거장이라 불리는 바바라 해머, 그녀는 그저 영화에 관한 작업만 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작품을 통해 레즈비어니즘, 레즈비언 운동의 방향 모색, 레즈비언 작가의 작품 발굴 등,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사회 현상을 전반적으로 다루었다. <바비의 일생:Tender Fiction>을 통해 바바라 해머는 처음 ‘레즈비언’이란 단어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70년대 쯤 여성주의를 접하며 레즈비언이란 단어를 알 게 되었고, 그 가운데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며 자신이 작품을 통해 텍스트 화 하고자 했던 컨텐츠들의 방향이 많이 달라졌다. 한 번은 그녀의 1974년 작 <레즈비언 사랑의 기술:Dyke Tactics>, 이 작업에 관해 “어떻게 그런 유토피아 같은 환경에서 유토피아 같은 영상을 찍을 수 있었는가?” 하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기존의 페미니즘 영화나 영상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영상이었는데, 바바라 해머는 그저 아는 친구들과 뒷동산에 올라가 찍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원래 60분가량의 영상을 만들려고 했는데 영상미와 여러 가지를 고려하며 자르고 자르다 보니 <레즈비언 사랑의 기술:Dyke Tactics>는 결국 4분이란 러닝타임으로 선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바바라 해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고민과 혼란스러움을 내보이는 작업들이 쉽게 보이진 않는다. 여성영화를 보면 주로 각 감독의 첫 작품에서는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 혹은 억압의 기제 등등을 내보이고자 하는 시도들이 많은데, 바바라 해머는 첫 작업부터 마지막 작업까지 이성애중심적인 사회나 가부장제를 비난하거나 폭로하고자 하는 그러한 형식이 아니라, 항상 작품의 중심을 퀴어나 레즈비어니즘 등에 두고 있다. 중점을 두는 방식이 다른 작가와는 다소 다르다. 분명 소수자적인 관점을 담아내지만 비난이나 분노의 영상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더욱 주체화하여, 어떻게 하면 레즈비언의 메시지를 잘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중점을 두고는 한다. 이런 모습들이 전반적으로 바바라 해머가 재현하고자 하는 작품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 바바라 해머는 거의 모든 자신의 작품에 등장한다. 자신을 레즈비언, 여성, 예술가로 정체화 하는 바바라 해머. 그녀의 초기 작업부터 가장 최근의 작업까지를 모두 지켜보면, 한 번도 이러한 키워드와 이에 관한 장치들이 떼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영화에는 관객, 감독, 등장하는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가 응시하는 대상이 있다. 바바라 해머는 거의 항상 캐릭터로 등장해 인물이 되고 또 감독을 하며, 그 가운데 또 캐릭터가 응시하고자 하는 대상(레즈비언, 여성, 예술가)이 된다. <말이 아닌 은유:A Horse Is Not A Metaphor>를 예로 들어보면 말과 바바라 해머가 등장함으로 이것들이 끊임없이 겹치게 되어 일치된다. 영화라는 매체는 애당초 그 시초부터 이성애자 남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만들어져가는 것이었다. 그런 ‘주류적인’ 시선과 응시하고자 하는 대상 등을 바바라 해머가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며, 이 응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관해 다른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을 거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시각 미술에서도 여성의 누드를 그리고자 한다면 그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관객은 늘 이성애자 남성이다. 바바라 해머는 이를 알고 끊임없이 작품 속에서 감독이자, 관객이 되고, 캐릭터가 되고 또 대상이 되어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며 이성애자 남성 중심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Herstory

바바라 해머의 작업은 크게 네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1970년대, 레즈비언의 섹슈얼리티와 몸의 재현 - 1974년부터 1978년까지 네 편의 영화를 제작하며(<레즈비언 에로티카:Lesbian Erotica>_ 레즈비언 사랑의 기술:Dyke Tactics, 1974/내가 사랑하는 여인들:Women I Love, 1976/멀티플 오르가즘:Multiple Orgasm, 1977/이중 강도:Double Strength, 1978) 가장 치중 했던 부분이다. 네 편의 영화를 통해 레즈비언의 섹슈얼리티와 여성의 신체를 가장 많이 장면화 하였으며, 장면화를 통해 이를 재현하고 가시화하고자 했던 시기이다.


2. 1980년대, 미디어와 나르시즘 - 80년대에 들어서는 미디어와 자신의 몸을 일치화 시키고자하는 작업을 주로 하였다. 이 때 미국에서 비디오아트가 성행하며 여성주의 비디오아트 역시 붐을 일으켰다. 이 때 미국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미디어아트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작품, 작가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몇몇 여성주의 작가의 작품은 남성 예술가의 작품 못지않은 가격으로 팔리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비디오 문화 가운데 바바라 해머도 비디오 그래픽과 이미지 프로세싱적인 요소를 가지고 많은 실험을 했다. 이 시기에 또 유행했던 것이 바로 비디오 퍼포먼스인데, 이것 역시 몸과 비디오가 일치되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비디오와 여성의 몸이 일치되어 어떠한 텍스트/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인가, 또 어떻게 관객에게 보여줄 것인가에 관한 고민과 시도가 많았던 것이 바로 1980년대이고, 비디오나 디지털적인 속성들을 많이 담은 것이 이 시기의 특성들이다. 그 작업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의 몸에 텍스트를 붙이고, 이미지를 붙여 꼴라쥬를 만든 그녀의 1989년 작품 <텔레비전 파이:TV Tart>다.


3. 1990년대, 다큐멘터리 - 이 시기의 작업들이 가장 성과가 있었고, 수상도 많이 하였으며, 또 여성영화제에서 상영이 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작업을 논하기에 앞서, 한국에서는 영화와 미술을 분리하여 감상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 양 장르간의 교류가 잘 없는데 미국은 아방가르드 영화, 사운드 아트 등 상이한 분야 간의 교류가 많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영화적인 면으로만 바바라 해머의 작품을 읽으면 아무래도 한계가 있고, 시각예술적인 측면에서도 연결을 시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스토리 위주로 해석하게 된 것은 소설의 극화를 핵심역량으로 두었던 헐리우드 시스템의 영향이 아닌가 싶은데, 이를 계기로 예술적인 영화는 모두 ‘비주류’로 배제되고 스토리 위주의 영화가 지금의 주류 영화가 된 것이다. 다시 돌아와 회화를 예로 들자면, 그림 안에 상당히 많은 텍스트가 녹아있기 때문에 그 텍스트들을 해석을 해야 그 회화를 읽을 수 있을 수 있듯이, 바바라 해머의 영화 역시 영화의 극적인 측면으로만 읽으면 화면 안에 다양한 텍스트들의 해석체들을 놓치게 된다. 또 바바라 해머는 영화를 종합예술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화면과 더불어 사운드에 녹아있는 텍스트를 읽는 것도 중요하다.


7-80년대가 주로 화면에 텍스트를 삽입한 시기였다면, 90년대는 전반적으로 다소 추상적인 다큐멘터리를 많이 제작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에세이 다큐멘터리’라 소개하고, 또 관객들이 그렇게 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얘기 한다. 바바라 해머는 이 시기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역사의 재구성/레즈비언 예술가의 가시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다큐멘터리 삼부작을 통해 추적<질산염 키스:Nitrate Kiss>/구술<바비의 일생:Tender Fiction>/재전유<역사수업:History Lessons>의 방식으로 기존의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역사의 시선을 배제하여 역사를 재구성 하고자 하였고, 레즈비언 인물의 자서전을 영화 형식으로 제작하여 가시화를 이루고자 하였다. <여성의 옷장:The Female Closet>, <연인, 타인:Lover Other> 이 두 작품이 레즈비언 인물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인데, 이 두 작품의 특징은 죽어있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말하게 하는 것이다. 바바라 해머의 입장에서 제 3자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로 삼고 있는 인물들이 직접 ‘나는 이랬었지.’하는 형식으로, 1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자신의 역사를 구술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이렇게 추적, 구술, 자서전 등 여러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냈지만 90년대는 전체적으로는 레즈비언 역사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관한 의제를 가지고 작업을 했던 시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4. 2000년 후, 레즈비어니즘의 관점으로 본 세계관 - 바바라 해머가 90년대까지 레즈비언/퀴어의 역사에 주로 치중했다면,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공표했기 때문에 주로 레즈비언/여성이 바라본 ‘세상’을 주로 담아냈던 것 같다. <제주도 해녀:Diving Women Of JeJu-Do> 라던가, <아웃 인 남아프리카:Out In South Africa>, <저항하는 파라다이스:Resisting Paradise> 등을 보면 전혀 레즈비언이 아닌 인물을 담기도 한다. 이런 것에 많이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전반적인 주제가 레즈비언과 그 역사를 담는 것에서 레즈비어니즘이라는 관점으로 바라 본 세상이 어떤가를 담아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 본 강연문은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주최한 <바바라 해머 회고전>과 더불어 기획된 것으로 공유하고자 블로그에 올립니다. 옮기실 때에는 트랙백을 달아주시고,  이용하실 때에는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강좌'임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바바라 해머 회고전 강연회 - 3강
한국 레즈비언 운동의 역사, 그리고 시네마


한 채 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2010년 1월 15일 / 미디어극장 아이공 


이런 생각을 하다가 급기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즈비언의 이미지가 참으로 왜곡 되었고, 또 동시에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설명하기가 참 힘들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다시 연대기를 보게 되었고 결국 1991년 전의 역사를 살펴보게 되었다. 70년대 한국영화를 보면 레즈비언에 관한 영화가 매우 많이 나왔다고 한다. 치마씨와 바지씨 등의 내용이 대표적이다. 계속 따지고 올라가기 시작하면 궁녀들의 동성애, 세자 빈씨의 이야기 등 얼마든 올라갈 수 있겠지만 가깝게 살펴볼 수 있는 것은 2-30년대 신여성, 신여성의 동성애다.

1924년 두 명의 기생이 동반 투신자살을 한 기사가 처음 나왔다. 1938년까지 이러한 자료가 있었는데 1924년부터 1938년까지 이 사이에 두 명의 여성이 함께 동반 자살을 하거나, 시도 하거나, 실패 했거나 등등의 사례, 기사가 많이 나왔다. 오피스 걸, 간호사, 기생 등 많은 사례들이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31년에 있었던 ‘철도정사’라는 철도 자살 사건이다. 홍옥임(홍난파의 조카이기도 하다)과 김용주 두 사람의 자살은 가장 가시화되었고 많은 주목을 이끌어냈다. 두 사람이 이화학당을 나온 학생이었다는 점, 김용주는 결혼을 한 상태였다는 점 등이 이유가 아닐까 싶은데, 가장 주목할 만 한 점은 자살 후 각자의 집에서 두 부모가 두 사람의 장례를 같이 치러주었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당시의 사람들이 동성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같이 장례를 치러주기도 했지만 그 두 여성의 사랑, 자살의 이유는 아무래도 지금의 것과 많이 다를 듯하다. 지금의 자살은 레즈비언을 변태라 하는 시선에 불만을 품고 억압을 못 이겨 자살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때는 레즈비언에 대한 억압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동성애가 일반적일 정도였다. 근대교육이 학교로 들어오며 여자들끼리 학교에 가는 것이 가능해진 시기이며, 이 때 부터 여자들만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위 자료들을 살펴보면 그 당시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서로 좋아하는 것을 ‘허용’해주었다. 그런데 다시금 살펴보면 여성들은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다, 그래볼 수 있다 등 언젠가는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시선이 만연해있었다. 지금과는 다른 식으로 구성 된 정체성이기에 이런 두 상황을 보고 똑같은 레즈비언이라 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레즈비언의 정의는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이다. 하지만 이 정의가 다 담지 못 하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라는 정의도 좋지만, ‘여자에게 사랑받는 여자’라는 정의로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솔로 분들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저 정의를 살짝 바꿔보면 ‘여자에게 사랑 받길 원하는 여자’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레즈비언에 대한 정의를 바꾸자는 말이라기 보단 이러한 개념으로도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제안하고 싶다. 홀로 여성을 욕망하기 보단 ‘여성을 욕망하고 여성에게 욕망받길 원하는 여성’으로 말이다. 물론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더 주체적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보면 남성이 사랑하는 여자라는 카테고리 하에서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로 정의되는 것이 아쉽고, 그렇게 레즈비언의 이미지가 왜곡되는 것이 불편하다. 여자에게 ‘사랑받는’ 여자와 ‘사랑하는’ 여자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은비늘 등의 작품을 보면 사랑하는 여자만 있었지 사랑받는 여자로서의 레즈비언은 없었다. 사랑받길 원하는 여자로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필기하는 소리보다 웃음소리가 더 컸던 이 날의 강연회

마치며
레즈비언 운동에 있어 ‘가시화’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을 가시화하는 것일까. 자신을 헤테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체성의 차원이 아니다. 이성애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고 정체화 할 필요가 없는, 정상적인 것으로 이야기 되어 왔기 때문이다. 정체성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운동이었다. 자신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었던 이성애자는 성정체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동성애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할수록 이성애라는 정체성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상황을 볼 때 레즈비언 정체성이라 말해지는 것, 이 ‘정체성’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 달 후에 강연을 했다면 고민뿐만이 아니라 대안도 함께 제안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질의응답
Q1_ 강연 중 1920년대 여성들의 동성애가 레즈비언이라는 개념은 없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인정받는 분위기였다는 부분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상황에 대해 ‘인정’이라기 보다는, 그 당시에 여학생들 사이에선 낭만적 사랑이라는 것이 유행을 했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식으로 해석이 된다. 다시 말해 여성의 정조가 중요시 되던 시대적 배경에서 젊은 여성들이 정조를 잃지 않고 낭만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 동성애였다는 식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이러한 것이 미래에 결혼할 남성을 위해 정조를 지키는 일이었기에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결국 남성과 결혼을 할 여성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지금도 청소년기의 10대 동성애자에게 ‘너희들이 동성애를 해봤자 결국은 이성애자가 될 것이다. 호기심에 그러는 것 같은데 괜히 이상한 짓 하지 말고 바른 길을 가라’라는 식으로 정체성으로 인정하지 않고 일시적인 감정으로 보고 개도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보면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아주 나이브한 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아까 영화들을 짚어주셨는데 봉자 노란머리 등 한 남자를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재밌었던 것 같고, 여고괴담 4에서도 감정적인 것이 더 진지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런 것에 관한 것도 연대기에서 더 짚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A_ 얘기했던 ‘인정’이란 지금 시대에서 여성이 여성에게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식의 변태로 보는 상황에 비해 그 감정 자체는 인정을 하는 것이라는 의미였었다. 그 때는 동성연애라 칭했고 이성간의 연애와 같이 동성이 연애했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니 한 때의 감정에 희생당했다는, 한 때의 진지한 감정이 나중에 끝이 날 텐데 그것이 폭발해 자살을 했다는 식의 인식도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많이 사라졌고 앞으로 많이 사라질 것이다.


Q_‘효용’ ‘지나가는 뻘짓’ 등 지금 10대 청소년 아이에게 동성애를 상담한답시고 상담하는 선생님들의 말이 ‘이성애로 전환해야한다. 빠질 필요가 없는 것인데 빠졌다.’ 등 정체성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의 시기’로 얘기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A_ 모두 지나갈 것인데, 빠져서 안 되는 것이라고 보는 그러한 인식 모두 말씀하신 대로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말씀하신 더 많은 영화들도 결론적으로 보자면 레즈비언의 이미지가 모두 남자와 섹스 하는 여자로 나왔다.


Q_ 여고괴담4같은 경우는 남성과의 섹스가 전혀 나오지 않는데...


A_ 그래서 흥행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게이 영화와 레즈비언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게이 영화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레즈비언 영화에서는 두 여자의 이야기가 없다. 그것이 왜 없냐하는 것이 나의 고민이었다. 그런데 여성의 위치를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두 남자의 사랑은 그려질 수 있는데 아직 두 여자의 사랑이 그려질 수 없는 것이다.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서 레즈비언의 이야기가 가시화되기가 참 힘든 것 같다.


김연호(모더레이터, 미디어극장 아이공 대표)_ 우스갯소리로 레즈비언 영화는 게이를 제외하고는 다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반 남성들까지.


Q2_ 여자에게 사랑받길 원하는 여자라는 정의가 참 신선하고 재미있다. 오늘 강연에서 레즈비언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는데 일반 여성들이 ‘여성들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많이 해오며 살아가진 않는 듯하고, 주로 대중문화에서 그러한 여성의 상을 많이 구축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한 채윤씨 역시 권력을 가진 남성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나의 정체성은 어떻게 구축되는가 하는 노력을 하신 것 같은데, 사실 나 자신은 그렇게 구축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것을 생각하다 보면, 그런 시각들은 남성과 함께 살아가고 그들과 개념을 공유하기 때문에 없을 수가 없을 듯하다. 여자에게 사랑받길 원한다는 여자라는 것으로 가시화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가시화한다는 것은 그런 지점에서 이루어지지 않아야 할까 생각하는데...


A_ 사람들은 레즈비언을 이성애중심적인 남성사회에 가장 큰 대립각을 세운 급진적인 존재로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대립각조차도 세워지지 않은, 여성에 흡수되고 게이 중심적인 동성애자 운동에 흡수된 위치에 있다는, 대립각도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랑받는 여자라는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았기에 문제가 되었고 불쾌함을 야기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받는 여자를 함께 그리고자 하는 그러한 움직임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요지였다. 주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외면하고 잘 먹고 잘 산다 하는 차원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며 우리가 보여줘야 할 그러한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사랑받는 여자라고 이야기 했을 때, 혼자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고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받는, 그러니 상대까지 고려하는 그러한 관계를 얘기하는 것이라 이렇게 설명하는 방식을 공유하면 다른 싸움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_ 이렇게 다른 관점으로 레즈비언 운동의 개념을 재 개념화해서 운동을 하면 훨씬 더 폭넓은 운동이 되지 않을까 하는 포부를 얘기하시는 것 같다.


정리 : 바바라 해머 회고전 자원활동가 송이원 

* 본 강연문은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주최한 <바바라 해머 회고전>과 더불어 기획된 것으로 공유하고자 블로그에 올립니다. 옮기실 때에는 트랙백을 달아주시고,  이용하실 때에는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강좌'임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바바라 해머 회고전 강연회 - 3강
한국 레즈비언 운동의 역사, 그리고 시네마


한 채 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2010년 1월 15일 / 미디어극장 아이공 


         한채윤 강사님의 인기를 증명하듯 빈 자리가 없었던 미디어극장


들어가며

늘 비슷한 주제로 강의를 해오던 편이었는데 이번엔 레즈비언 시네마와 관련 지어 새로운 주제를 준비해보았다. 지금껏 레즈비언이 가시화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로 영상에 담아왔던 바바라 해머이기에 이번 강연을 준비하며 한국의 레즈비언 운동의 역사를 가시화된 대중 매체, 영화와 관련지어 강연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준비를 하다가 한국의 레즈비언 운동이 15년 쯤 되었는데, 그 간 가시화라는 측면에서 얼마나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는가를 생각해보니 꽤나 답답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가시화되지 않는 레즈비언, 이에 관해 ‘왜 생각만큼 가시화가 되지 않는 것일까’ 하고 많은 고민을 해보다가, ‘대체 레즈비언은 무엇인가’ 하는 것까지 주제를 넓혀가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정리되어 있는 이론을 설명하진 않을 것이다. 그저 나의 수준 에서 ‘짜집기’하여 나 자신의 의견과 여러 따끈따끈한 ‘검증되지 않은’ 생각들을 주로 얘기할까 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았으면 하는 생각이고, 또 기발함을 얻어가는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로 레즈비언의 역사, 레즈비언의 이미지,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오가며 살펴보려 한다.



레즈비언의 역사

레즈비언의 역사는 1991년을 기점으로 잡아 오늘날 2010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여기서 1991년을 기점으로 한 것은 이 때 ‘사포’라고 하는 주한 외국인 레즈비언 모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포’는 외국인 레즈비언의 3인의 모임에 그들의 지인인 한국인 레즈비언 여러 명이 함께 모임을 이어가는 상태였다. 그러다 미국에 거주하던 게이 활동가들이 입국을 하며 ‘초동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초동회’는 오래 되지 않아 해체되었다. 게이 중심적인(에이즈 운동) ‘초동회’의 운동 취지가 레즈비언에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굵직한 역사 위주로 살펴보자면 ‘초동회’ 해체 후 얼마 안 돼 1994년엔 ‘끼리끼리’라는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모임이 창시되기도 했고, 1998년엔 ‘티지넷’이라는 레즈비언 커뮤니티 사이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에 이어 1996년 5월엔 ‘레스보스’라는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바가 오픈 되었다.(사실 1995년 대전에 ‘레포’라는 레즈비언 바가 이미 있긴 했지만, ‘레포’는 초기 오픈 때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오픈 된 것이 아니었기에 96년 수도 서울에 오픈된 ‘레스보스’를 최초의 레즈비언 바라 하는 것이다.) 또 2000년엔 레즈비언 풍물패 ‘바람소리’가, 2005년 ‘레주파’라는 레즈비언 라디오 방송이 처음 만들어졌다.


조금 더 상세히 보자면 1997년에 ‘니아까’라는 최초 레즈비언 잡지가 발간되었고, 1998년엔 ‘버디’가 발간되었다. 1999년부터 신촌 공원에 청소년 레즈비언들이 모이기 시작했으며, 이 때 ‘아쿠아’라는 10대 레즈비언 사이트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1999년 부산에서는 ‘달팽이’라는 10대 동성애자 청소년 인권운동 모임이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10대 레즈비언 문화는 1999년을 기준으로 활성화되었다 볼 수 있다.


또 주목할 만한 것은, 2001년을 기점으로 레즈비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반 성폭력 운동이 시작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상대방의 두 팔을 잡고 어떻게 성폭력을 하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표면화되지않고 터부시 되던 동성간 성폭력 문제에, 더 이상 숨겨선 안 되며 가시화의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속출해 반 성폭력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또 2002년엔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가 (이하 ‘변날’) 만들어지게 되었다. 처음 한국에서 대학 내 동성애자 모임이 만들어 진 것은 1995년이었다. 그러나 이 중에서 후발대에 속하는 ‘변날’을 중요하게 얘기하는 이유는, 95년도의 대학모임들이 인권운동을 표방하고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98년도를 기준으로 거의 다 친목 모임으로 성격이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2002년이 ‘변날’에서 게이 중심적이지 않은 레즈비언 인권운동을 시작한 시점이라 서술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러한 레즈비언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이슈는 2007년의 ‘차별금지법’이라 할 수 있다. 2007년 차별금지법에서 동성애 조항이 삭제되며 인권운동에 많은 관심이 없었던 성소수자들도 운동에 참여를 시작하게 되어 이 사건을 역사의 큰 전환점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2008년엔 최현숙씨가 한국 최초로 커밍아웃을 하고 선거에 나섰다. 선거의 승패를 떠나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후보가 선거 운동에 참여했다는 점은 아주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크고 좋은 일들이 참 많았는데 이 역사를 보니 어떤 느낌이 드는가?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변화가 컸냐고 물어보면 딱히 크다고 얘기하기엔 좀 어려울 것 같다. 게이나 트랜스젠더의 연대기와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큰 차이가 난다. ‘바람소리’, ‘레주파’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두었냐 물어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버디’나 ‘니아까’도 모두 폐간되었다. ‘끝’이라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림잡아 20년의 역사 동안 많은 걸 쌓고 또 비가시화 문제에 대해 가시적인 성과를 남긴 것 같지도 않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20년 간 해온 것에 관해 얘기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을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가시화’가 여전히 부족하단 고민을 하다가 이 ‘가시화’라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영화, 대중매체가 아닌가 싶어 이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레즈비언의 이미지/레즈비언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한국 레즈비언의 역사이니 만큼 한국의 영화/대중매체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레즈비언의 정체성과 그 이미지

버디에서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영화라 칭하는 작품은 1976년의 <금욕>이다. 현재 비디오만 남아있는 상태인데 원제는 <여자와 여자>다. 한 20대 모델 여성이 남성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고 이것을 본 부유한 40대 여성이 그 20대 여성을 집으로 들여 상처를 치유해주는 내용의 영화다. 당시 유명배우였던 신성일이 출연하는데 그 배역은 40대 여성의 남편 역으로, 그의 아내를 학대하는 역할이었다. 작품 중에 40대 여성이 20대 여성을 치유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이 ‘치유’란 나신의 여성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에로틱한 장면이 많이 나왔다. 영화 후반부에 20대 여성이 디자이너 하형수와 결혼을 하겠다며 집을 나가겠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 왜 자신에게 이렇게 집착하냐는 20대 여성의 질문에 40대 여성이 그건 내 인생의 전부를 너에게 줘버렸기 때문이야’라는 대답을 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대사는 그 외의 한국영화에서 나온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20대 여성은 떠나버렸다.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영화라 칭해지는 작품 <금욕>(1976)


 

그 후에는 딱히 주목할 만한 레즈비언 영화가 없다가 1997년 쯤 지상파 방송국에서 <은비늘> <숙희, 정희> 등의 레즈비언 단막극을 방영하곤 했다. 1996년도에 한국 영화는 아니지만 <바운드>가 개봉되었고 또 여성영화제가 시작되었다. 아마 이 영향을 받아 이러한 단막극이 방영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 후 1999년, <여고괴담 2>가 개봉되었고 <텔미썸딩>이 개봉되었다. 이 후로 레즈비언 영화나 드라마가 계속 나올 법도 한데 딱히 없었다. 아마 홍석천씨의 커밍아웃과 하리수씨의 데뷔 등이 작품에서 레즈비언을 다루는 데 부담감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다 2002년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가 개봉되었다.(이하 <태권소녀>) 이 시기에 버디 사무실에 제작자가 많이 찾아오곤 했다. 한 번은 <나인 하프 위크> 분위기로 레즈비언 영화를 쓰고 연출, 제작을 해달라는 의뢰도 들어왔었는데 참 힘들었다. 흔히들 쓰는 표현으로, 때려치웠다. <태권소녀> 같은 경우도 시나리오가 왔는데, 감독을 만나 만들지 말라는 말도 했었다. 영화 제작과정에선 많이 수정되었지만 처음 시나리오가 왔을 때는 레즈비언 입장에서 참 보기 힘든 영화였다. 그래도 나름 대안가족이라는 키워드를 내걸긴 했던 작품이다. 2004년엔 <주홍글씨>가 개봉되었고, 노골적인 레즈비언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2007년에는 레즈비언 캐릭터가 등장한 <뜨거운 것이 좋아>가 개봉되었고, 최근 2009년에는 4편의 단편 영화 중 2편이 레즈비언에 관한 내용을 다룬 작품인 <오감도>가 개봉됐다.


 

지금껏 이러한 영화들이 개봉되었다. 또 한 번, 이게 다다. 레즈비언을 다루고 있는 영화도 이정도일 뿐이고, 직접적으로 다루었다지만 꼭 남자와의 섹스 신이 등장하였다. 모든 레즈비언 영화에 레즈비언이 등장하지만 또 동시에 항상 남성이 등장하고, 그 남성과의 관계를 그려간다. 왠지 레즈비언 이미지가 이상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이다. 레즈비언은 원하면 남자와 섹스 할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고, 그런 게 아니라면 집착, 도덕적 결함 등이 있는 인물로 그려지곤 했다. ‘왜 제대로 된 레즈비언 이미지가 등장하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문득 ‘그렇다면 레즈비언 이미지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결국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 그 존재 자체가 아주 애매한 이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성’에 있어 가장 중심적이었던 것은 남성이 있고 남성이 아닌 존재가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전부는 남성이고 나머지는 비-남성, 소위 덜떨어진 존재라는 것이었다. 비-남성은 의미나 이름을 가지지 못한 채 역사가 흘러왔고, 여성이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성이 비-남성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불리고자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즉, 남성을 중심으로 모든 인간을 생각해왔던 의학 발달, 종교, 정치 등, 이 가운데 ‘인간취급’을 받지 못 하던 여성들이 여성으로서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비-남성이라는 것을 파괴하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동성애자 운동이 시작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게이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남성은 ‘삽입하는’ 존재고 여성은 ‘삽입 받는’ 존재라는 인식 중에서 남성 동성애자들이 ‘삽입 받는’ 위치의 존재로 등장하였고, ‘남성다움이 무엇이냐’ 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 남성 동성애자 운동이다. 이들은 기존 남성들의 질서를 흔들어놓았다.


여기까진 아주 중요한 변화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레즈비언은 무엇을 할까? 이러한 구도 속에서 레즈비언은 어떻게 기존 남성들의 질서를 흔들고, 어떻게 대립각을 세울 수 있을까? 레즈비언 운동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라기 보단 여성운동과 게이운동이라는 동성애자 운동 사이에 끼어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성운동 담론 중, 질 오르가즘과 클리토리스 오르가즘의 논쟁 속에서 삽입 없이, 즉 남성 없이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예로 레즈비언이 드러나고는 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약간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여성운동 분위기 속에서 ‘정치적 레즈비언’의 이야기도 나오곤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남자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애당초 남자가 필요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필요 없다’로 나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 아주 불편하다.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상관이 없는 것이다. 레즈비언의 섹슈얼리티를 따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 헤테로 여성의 라이프스타일로 해석하곤 하는 이러한 태도에 레즈비언의 정체성은 엉성하게 여성운동의 남성 대립각에 끼어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우리가 넘어서야 하는 것은 ‘자매애’라고 생각한다. 순수하다고 여겨지는 자매애와 레즈비언의 사랑을 구분하다보면 결국 섹스(행위의 섹스를 뜻한다)에 관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레즈비언은 여성 담론 안에 포함이 되지만 헤테로 중심적인 여성담론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싸우고 구분하다보면 늘 섹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제 동성애 운동과 양립시켜 보자. 같을 동자를 쓰는 동성애. 이러한 것을 보면 성이란 것은 같거나 다르거나 하는 둘 중 하나로 해석이 되는 듯하다. 남성과 여성, 이렇게 두 성이 있고 남성 대 남성, 여성 대 여성으로 동성애를 이야기한다. 이러다보면 빠지게 되는 함정이 바로 성별 이분법적인 문제이다. 여성주의 담론에서는 넘어서야 할 이분법적인 문제를 동성애자의 담론 속에서는 그것을 안고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남성에게 있어 각 대립각에 있는 여성이란 남성에게 대드는 존재, 게이란 남자답지 않은 존재이다. 그렇다면 레즈비언은?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존재다. 그러니 지금까지 얘기해왔던 영화에서처럼 ‘강간’이라는 방법으로 ‘벌’하는 것이다. ‘왜 나를 사랑하지 않냐’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왜 남성이 보는 포르노에 자주 레즈비언은 등장하냐는 문제에 관해 한 학자가 얘기했던 것이 인상적인데, 남성에게 여성은 대드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흥분시켜야 할, 만족시켜야 할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남성에게 있어 여성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인데 반대로 레즈비언은 남성이 없어도 흥분을 한다. 그래서 레즈비언이 애무를 끝내고 흥분을 하면 마지막에 남성이 등장해 대미를 장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되바라진 존재인 레즈비언의 존재는 동시에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지금까지 얘기했던 영화만 봐도 알 듯 레즈비언은 모두 남성과 섹스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다음 내용] 한국의 레즈비언 운동, 그리고 시네마-2/2

* 본 강연문은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주최한 <바바라 해머 회고전>과 더불어 기획된 것으로 공유하고자 블로그에 올립니다. 옮기실 때에는 트랙백을 달아주시고,  이용하실 때에는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강좌'임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바바라 해머 회고전 강연회 - 2강
주디스 버틀러, 젠더에 트러블을 일으키다 
: 비결정성의 젠더 계보학

조 현 준 (경희대학교 교양학부/<젠더트러블>역자)

2010년 1월 15일 / 미디어극장 아이공 



1990년에 출간 된 <젠더 트러블>이 19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2009년에 한국에 번역 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현실 혹은 이러한 한국의 상황과 달리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 출간 후 그녀의 핵심 주장 중 하나인 ‘수행성(performativity)'에 대한 반박들을 하느라 거의 10여 년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미디어극장 아이공을 꽉 채운 수강생들



버틀러의 퀴어 이론


성이란 개념은 sex, gender, sexuality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sex란 생물학적인 것, 선천적인 것으로 타고나는 몸이라 볼 수 있으며 생물학적인 남성(male), 생물학적인 여성(female)으로 나눌 수 있다. gender는 문화적인 것이며 후천적인 것으로 정체성, 즉 identity의 문제라 볼 수 있다. 자신을 여성/남성 중 누구와 동일시하는가에 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sexuality는 욕망에 관한 것이다. 어떠한 상대에게 ‘chemical reaction'을 일으키냐에 따라 크게 heterosexual(이성애자), homosexual(동성애자)로 나눌 수 있다.


이런 성의 개념을 살펴보다 보면 sex부터 시작해 gender, sexuality까지 기존의 성에 대한 인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긴다. 흔히 masculine하다 일컬어지는 ‘남성다운’ 생물학적인 남성과, feminine하다 일컬어지는 ‘여성다운’ 생물학적인 여성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생물학적인 차이에서부터 생긴 ‘불일치’는 gender와 sexuality의 차원으로 넘어가며 더욱 복잡해지게 된다. 그래서 trans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trans는 trans vestite, trans gender, trans sexual로 나눌 수 있다. trans vestite은 다른 말로 cross dresser라고 할 수도 있으며 흔히 쓰이는 말로 drag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반대 성의 특징을 ‘모방’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trans vestite을 사전에 찾아보면 ‘복장 도착자’라는 해석이 나는데 이는 정신적인 disorder를 전제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trans gender는 심리적으로 타이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이다. 이 역시 gender identity crisis, 성적체감장애 등의 부정적인 수식어가 붙는다. trans sexual은 반대의 성에 동일감을 느끼는 것과 더불어 물리적으로 성전환을 시술을 거친 상황을 뜻한다.


성이라는 개념을 해석하는 단계부터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일치’에서 보았듯이 Queer의 영역은 상당히 유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버틀러의 퀴어 이론은 sex와 gender에 대한 반-본질주의, 혹은 반-토대주의가 주를 이룬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형성되는 것과 집단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있는데, 이 개인과 집단이 또 각각 본질적인 것이라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과 끊임없이 구성되어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총 네 가지의 가능성을 가진다. 유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 가능한 정체성의 변화하는 과정을 이야기 하는 것,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고 가능성을 열어두며 스스로 자신의 이론을 허물어가는 것이 그녀의 퀴어 이론이 아닐까 생각한다.




버틀러가 생각하는 gender identity는 모방(parody), 수행성(performativity), 주체화(subjection), 애도(melancholia/mourning) 4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패러디란 ‘모방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것’의 의미를 가진 단어이고, 버틀러는 gender는 패러디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 주장한다. 모방본이라는 것이 있으면 원본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데, 그녀는 gender에 원조라는 것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을 어떻게 연출하냐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장충동에 가면 ‘원조’라는 간판을 단 족발 가게가 수도 없이 많지 않은가? 모두 원본이라 여겨지는 ‘이상’ 혹은 그 이미지를 모방하며 그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드랙 킹/퀸을 생각해보면 ‘모방본’이 ‘원본’보다 더 과장적이고 이상적이다. 이상적인 원본의 특징과 이미지를 통해 연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원본과 모방본의 문제는 분리불가하며 심지어는 같다거나, 혹은 모방본이 더 우월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수행성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패러디에서 얘기하였듯이 어떤 의미에서든 근본적이고 토대적인 gender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수행/연행/공연이라는 뜻을 가진 perform을 통해 gender엔 행위만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다. 계속 이어 subjection이란 개념을 보면 복종-주체화의 상관관계를 통해 복종이 주체화 된다는 퀴어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퀴어라는 단어를 예로 들 수 있다. 이상한 것, 비-정상적인 것 이라는 의미를 가진 queer를 동성애자 자신이 받아들여 대안적인 문화로 발전시켰다. 변주된 복종, 삐딱한 복종이라 볼 수 있다. 어휘 자체를 바꾼 것은 아니지만 쓰이는 방식을 바꾼 재의미화를 통해 난잡한 복종, 주체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울증/애도의 개념을 설명한 뒤 버틀러의 퀴어 이론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미국의 9.11 테러가 수많은 희생자를 나은 후 한 동안 미국엔 애도의 물결이 흘렀고, 극복하고 이겨내고자 하는 분위기가 흘렀다고 한다. 이 때 버틀러는 그 ‘애도’에 이견을 던졌다고 한다. 한 주체가 대상을 열렬히 사랑했다고 가정하자. 만약 그 사랑했던 대상이 떠나면, 혹은 그 대상을 잃으면 한 동안 정신적인 슬픔을 거친 뒤 대상을 이동시키는 게 introjection, 애도다. 반대로 ‘대상’이 불분명하고 이동을 할 수 없는 것은 극복을 하지 못 해 incorporation, 우울증이 된다. 버틀러는 슬픔이 왜 극복하여야 할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이견을 던졌다고 한다. 버틀러의 우울증을 더 살펴보자면, 한 대상이 떠난 후 그 대상이 있던 자리는 ego가 대신한다고 한다. 그러면  그 ego가 있던 빈자리에 super ego가 들어서 ego가 대상을 사랑했던 것만큼 super ego가 ego를 증오하고 혐오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ego가 사라지고 강한 자기혐오를 하게 되는 것이 우울증이라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타자가 자신과 공존하는 것으로 순수한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자신의 존재는 사랑한, 사랑했던 대상의 집적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버틀러의 퀴어 이론을 염두에 두고 언급할 영화를 본다면 연관된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고, 훨씬 넓은 담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드랙에 관한 다큐는 원본/모방, 마스커레이드[각주:1]와 연출에 관한 내용이 아주 많을 것이다.



함께 관람한 영화

1. <미인시대>, 2005. 한국여성연구소
  : 한국 미적기준의
과거 그리고 변천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2. <그녀의 몸>, 2003. 국가인권위원회
  :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인권영화' <여섯개의 시선> 중 임순례 감독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오늘날 한국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보이고 말해지는지,
현재 한국의 미적기준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3. 드랙 킹/드랙 퀸에 관한 다큐멘터리

- <Paris is burning>, 1990.
  : 버틀러가 언급하기도 했던 작품이며 제니 리빙스턴 감독의 작품이다. Drag Queen에 관한 작품.

- <Venus boys>, 2002
  : Drag King에 관한 작품이다.

4. 바바라 해머의 작품

- <연인, 타인>, 2006

- <여성의 옷장>, 1998 


웃으며 즐기며 강의도 '늘 새롭게'


질의응답

Q1_ 애도의 정치성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었으면 한다.


A_ 우선 버틀러에 관한 이야기가 더 필요할 것 같다. 버틀러의 이론은 초기이론과 후기이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불확실한 삶’부터 인 것 같다. 전기엔 비교적 gender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후기에는 주로 자신의 인종에 관한 담론부터 시작해 보다 폭 넓은 소수자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 같다. 유대인인 버틀러는 ‘난 어려서 제도교육에 적응하지 못했던 문제아였다’ 라며 자신의 얘기를 통해 마이너리티의 문제를 껴안고자 하는 것 같다. 강연 중에도 얘기했던 부분이지만 ‘슬픔을 극복하라’는 논리에 애도란 상실 후 대상을 안에 품는 것이라 주장하며 슬픔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주체의 취약성을 인지하는 것이라 얘기했다. 이런 점이 정치와 맞닿아 있는 듯하다.


Q2_ 레즈비언과 게이, 즉 퀴어들이 예술에 공헌이 참 많은 듯하다. 이러한 이유로 퀴어가 주목을 받고 퀴어 이론에 관심이 몰리는 것 같은데, 이것도 어찌 보면 퀴어가 예술적인 능력이 뛰어나다는 편견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예술과 퀴어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A_ 다른 관점, 일탈 등의 키워드가 닮은 듯하다. 시대마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주도적인 시선이 있고 그 반대편엔 항상 비판적 거리와 저항성을 유지하는 존재가 있었다.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식하고자 하는 마이너의 퀴어, 이런 점이 비슷한 게 아닐까. 이렇게 보면 바바라 해머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묻힌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고자 했던 참신한 시도가 퀴어 예술인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예술계에도 기여가 참 컸던 것 같다.



정리 : 바바라 해머 회고전 자원활동가 송이원
 
* 본 강연문은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주최한 <바바라 해머 회고전>과 더불어 기획된 것으로 공유하고자 블로그에 올립니다. 옮기실 때에는 트랙백을 달아주시고,  이용하실 때에는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강좌'임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1. Masquerade.가면무도회 [본문으로]


바바라 해머 회고전 강연회 - 1강

욕망의 고고학으로서 레즈비언 재현
- 역사장편 다큐 3부작  <질산염 키스>, <바비의 일생>, <역사수업>을 통해

지 혜


3부작, 그 세번째_ <바비의 일생> 
 

<바비의 일생>을 통해서 볼 땐 바바라해머는 연대기적인 사건의 나열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여기에서는 자아가 얼마나 분열적이고 모순적으로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바비의 일생>에는 굉장히 과잉되고 왜곡된 목소리들이 나오는데, 이것은 모두 바바라 해머 자신의 못소리를 왜곡한 것이다. 억양의 고조를 선별하거나 조절하는 방식으로 나래이션을 깔아 진행된다.


이 작품은 바바라 해머의 어린시절부터 시작된다. 바바라는 헐리우드의 아역 배우인 셜리 템플[각주:1]이 되길 바랐던 엄마에 의해 오디션을 봤지만, 자신은 셜리 템플보단 찰리 채플린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셜리 템플의 사진을 오려 자신의 사진 위에 덧붙이는 등의 이미지 장난을 하는데, 어느 것이 자신이고 어느 것이 아닌지에 대해 헷갈리게 하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바라 해머의 어머니는 그녀가 셜리템플이길 바랐다.


자신의 어머니는 그녀가 셜리 템플이길 바랐지만 본인은 찰리 채플린이 되길 바랐던 바바라 해머에게, 어느 장면에서 흥미롭게도 그리피스의 이야기가 뜬금없이 등장한다. 왜 남장을 하며 그리피스의 이야기가 등장할까 궁금했는데, 아무 역사가 없는 영화사에서 그리피스가 등장했듯이, 아무런 역사가 존재하지 않던 레즈비언 시네마에서 자신이 그리피스의 존재와 같다는 것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레즈비언 그리피스처럼, 자신이 다루고 싶은 작품이 있어도 예산이 보장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는것, 그런 동일시를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남자와 동일시하고 찰리채플린처럼 남장을 즐겼다는 것, 아주 다양한 자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수엘렌 케이스(미국의 유명한 연극 이론가)를 인용하면서 실제 고양이가 남근을 가지고 노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장면에 ‘남근, 남근을 누가 가졌지?' 하는 수엘렌 케이스의 말을 인용하는데, 수엘렌 케이스가 얘기하는 남근은 생물학적인 남근이 아니라 부치 남성성의 남근을 뜻하는 것이다. 수엘렌 케이스의 그 말이 나오면 바바라 해머는 실제 남근 사이즈보다 훨씬 큰 남근을 가지고 노는 장면을 병치시킨다. '남근은 섹스토이일 뿐이다' 라는 게 수엘렌 케이스의 뜻인데 이것을 실제 고양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고양이와 남근'의 재현은 <역사수업>의 마벨 햄튼과 같은 경우이다. 바바라해머는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해를 뿌리는 장면을 등장시킨다. 바바라스미스의 텍스트를 꺼내서 말을 하는데, 백인성은 하나의 인종으로 인정하지 않는, 즉 백인을 하나의 보편성으로 인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장면에서 드디어 바바라해머가 인종 문제를 꺼내는구나, 라고 느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드를 로드가 한때 감명 깊게 들었다는 말을 해머가 인용한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들었을 때 절대 묵과하지 말라, 반드시 반응하라고 했던 말을 인상깊게 들었다고 바바라해머가 고백한다. 뭔가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면 자신의 백인성을 성찰하는 부분이 나와야 했다고 생각한다. 흑백의 문제가 유태인의 문제가 되고, 묵과하지 말라는 말에 대해서는 “난 아니야 얘야.” 라고 답하는 장면으로 끝나버리고, 그 후엔 해머 자신의 야인들과 알콩달콩 수박 먹는 장면이 나온다. 흑인 문제가 바바라 해머의 사상(역사)에 투영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느꼈다.


바비의 일생 에서는 “I is Lesbian couple."이란 말이 나온다. 영화와 해머의 인터뷰가 너무 달라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인터뷰에서 바바라 해머 는 ‘자아’라는 것은 절대 관계속에 포획되지 않는 다중적 존재라고 말했다. 하지만 바바라해머가 레즈비언들과 노는 장면들이 계속 나오면서 그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는다. 동성 부부가 되기 이전에 그녀는 그 말을 반복하는데 ‘바비의 일생’이 진행됨에 따라 그 말은 모호해 진다. 결말은 커플천국, 솔로지옥으로 간다. 동성 파트너인 플로리와 커플티를 입고 ‘레즈비언들은 서로 갈망한다’라고 한다. 진실이기도 하지만 문제되는 발언이기도 한것이, 해머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정치성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로의 몸짓을 보게 되고, 오래된 관계는 서로를 닮아간다고 말하며 해머는 ‘레즈비언 광고 이미지’를 교차 편집을 한다. 상품화 되어 있는 여자 2명의 이미지, 서로를 클로닝 한 이미지를 차용한 것은 ‘자신의 파트너와 닮아감’을 한 맥락에 놓고 보여주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부치도 아니고 팸도 아니고 그 중간이라는 발언을 플로리[각주:2]가 하는데 양성성을 지향하는 것이 당시에는 이상적인 것이었다. 이 말 또한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기도 한 문제적 발언이다. 부치[각주:3], 팸[각주:4] 관계를 안정적으로 만들었던 이들은 흑인.혹은 노동자 계급이었는데 그러한 발언을 하는 것은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의 나르시즘에 빠진 것 밖에 안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서전이란 것은 분명 파편적이고 편파적일 수 밖에 없긴 하지만, 플로리를 만나서 질서감. 사명감을 생각하게 되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분명 나이에 대한 영향이 컷을 것이라고 짐작되지만 그러한 설명은 없다.

물론 바비의 일생은 그녀의 자서전이지만 우리 모두의 자서전일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생각이 나는 든다. ‘그녀의 행복한 일생을 보는 영상 비디오’를 보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적어도 레즈비언니즘에 있어서, 어떠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가 정도는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가 자신의 계보를 보며 레즈비언이 있나를 찾아보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녀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이 거울에 비치는 데, 그것이 해머의 했어야 하는 작업에 대해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정리하자면, 과연 역사를 복원할 때, 누가 누구의 역사를복원하며 어떻게 전유할 것인가. 어떤 자료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자서전이 개인의 기록만이 아니라면, 즉, 집합적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바바라 해머는 그에 대한 응답을 넣었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과 함께 강의를 마친다.

 



묻고 되짚기


김연호(모더레이터, 미디어극장 아이공 대표, 이하 연): 다큐 삼부작에 있어 저와는 다른 관점을 갖고계신 것 같아요. <바비의 일생>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많이 이야기 해주셨는데, 바바라 해머가 레즈비언 운동을 시작한게 아니라, 대학교 산다라 고용비 임금에 관련된 운동에 참여를 했고, 블랙팬더 집회에도 동참을 했다고 해요. 학교에 있을 때 여성주의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게 1970년대였다고 하고요. 그러니까 60년대에 흑인운동 등에 동참을 하다가 70년대에 레즈비언에 대해서 깨어난 것이라고 보입니다. 미국에서 약 10년간 흑인인권운동이 일어났고, 프랑스에서 68혁명이 발현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초기에 자기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기에 그것이 베이스에 깔려있었다고 보입니다. 


지혜: 흑인 운동을 했던 게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나레이션을 60년대 그 국면을 기술하는 것으로 생각하고요. 블랙 팬더를 했다고는 듣지 않았습니다.


: 바바라 해머가 흑인운동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블랙팬더당의 집회 등에 동참을 했다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더라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고요.


지혜: 바바라 스미스의 인용이 끝난 다음에, ‘레즈비언 운동은 다른 사회적 운동과 같이 한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김연호 님이 이야기 한 부분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끝난 부분에는 두 커플이 신나게 수박을 먹는 장면이 이어지죠.


관객1: 영화를 통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동성애나 인종적인 억압...통제에 대해 이야기 한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동성애 자체에 대해서 억압하는 이유/ 혐오하고 꺼져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해 나가는지 궁금합니다. 이성애자들이 단순히 동성애를 한다는 것으로 만으로 과잉혐오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요. 


지혜: <역사 수업>이 그 부분에 대한 답이 될것 같네요. 레즈비언으로서 해머가 생각한 억압은 섹슈얼리티적인 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역사를 지웠다는 점입니다. <역사 수업>이 사회에서 억압받고 왜곡되는 황색언론의 소스들을 모아서 재활용 한 것이고, 거기서 사회가 생각하는 편견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관객1: 저의 의문은 과연'혐오의 뿌리가 뭐냐'는 것이거든요. 감독이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을 것 같아요.


관객2: 바바라 해머가 미국의 전반적인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역사적으로 변화를 시켰는지요.


지혜: 그것은 마지막 강의 때 김연호 님이 강의할 내용에서 더 많이 이야기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 바바라 해머의 역사장편 3부작은 ‘긴급함’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그냥 지나가는 순간으로 나둬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그리고 3부작으로 역사에 이렇게까지 집중한 것은 해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객3: 기획전을 마련해 주신 데에 감사드립니다. 97년에 바바라 해머 <역사수업>이 어디선가 상영된 적이 있는데, 매진이 돼서 못봤습니다. 그만큼 바바라 해머는 너무나 중요한 사람예요. 레즈비언 단체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역사쓰기 붐이 일어나기도 했었지요. 그것이 그 영화의 여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역사쓰기를 어떤 대표성을 가지고 할 수 있나 라는 의문도 듭니다. 


: 바바라 해머는 <말이 아닌 은유>를 최신작으로 내놓았는데, 이 작품에서 난소암과 투병하며 여성적 나르시즘을 버리지 않는 강렬한 에너지를 보여줍니다. 바바라 해머의 3부작은 바바라 해머가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남겨져 있는데요. 다시 한번 검토해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관객4: <질산염 키스>를 퍼즐을 맞추는 느낌으로 보았습니다. 역사와 개인사를 따라가면서 비판하고 겹쳐지는 이미지들이 저에게는 사실 익숙지 않았습니다. 그런 식의 '파편화된 스토리 텔링' 방식이 강연회를 들으면서야 이해가 많이 갔습니다. '아카이브'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모든 사람들의 파편화된 것들을 모아 두는 것, 혹은 과거를 비선형적으로 재해석하는 아카이브를 말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기록, 연대순으로서의 아카이브는 모순된 것이 아닌가요?


지혜: 아카이브가 계속 나오는 것은, 여러 가지 아카이브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뒤지고  그것을 조립하고 재편집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 때문에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인데,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론적인 부분에서 계속 조각되어 있고 파편화 되어있기에 저는 양날의 칼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정말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남아있지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남아있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것이죠. 

 - 제1강 정리 : 아이공 활동가 윤유진, 이아림

* 본 강연문은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주최한 <바바라 해머 회고전>과 더불어 기획된 것으로 공유하고자 블로그에 올립니다. 옮기실 때에는 트랙백을 달아주시고,  이용하실 때에는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강좌'임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1. 할리우드의 아역배우로 5살 때 데뷔해 전 미국인에게 사랑받았던 대중적인 아이콘이다. [본문으로]
  2. 바바라 해머의 파트너 [본문으로]
  3. 레즈비언 커플 중 남성 역할을 하는 레즈비언을 지칭하는 말 [본문으로]
  4. 레즈비언 커플 중 여성스러운 레즈비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