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여성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약 40년이 흘렀다. 봇물 터지듯 많은 곳에서 여성에 의해 성차별적인 법, 문화, 관습 등 다양한 억압과 착취의 고리들이 사라져갔다. 여성은 인간의 역사 최초로 그렇게 주체적인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창조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 사이 ‘여성주의’는 어떤 유행어처럼 사용되기도 하고,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의 사회적 노동과 맞물리며, 여성의 성해방이 성상품화로 전략적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간 여성주의 운동의 핵심과는 다르게 ‘사회’는 초자본주의로 극대화되어 여성간의 계급성이 더 뚜렷하게 증가하고, 분열되었다. 밸 훅스에 따르면, 미국 역시 여성간의 계급성이 상업화에 이용당하며, ‘그들’만의 여성주의를 미디어로 끌어들여 여성주의를 여성조차 오독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성주의 안에서의 분열. 여성주의 세대간의 분쟁. 소통의 부재와 단절과 무관심. 서로 너무 굶주려 왔고, 그래서 너무 믿고 신뢰하고 있었기에 분열과 분쟁에서 오는 단절은 여성주의 운동가들에게 큰 상실감과 운동지표의 절망을 남겼던 것은 아닐까?
종교적 실천이 된 여성주의
여성주의자에게 ‘여성주의’는 세상을 보는 하나의 눈이며, 올바른 가치의 이정표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잣대가 된다. 그렇게 여성주의는 세상의 평등과 존중감의 문화를 만들고, 주체적으로 만든 문화를 실천하려 노력해왔다. 여성주의자인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던 것도 여성주의를 나누고, 실천하고, 공유하는 몫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그 순간까지도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가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던 게’ 여성주의자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성주의자로서의 자기검열과 끊임없는 실천가로서의 행동은 종교의 성인들이 행하였던 태도와 닮아있다.
불교에서는 계율이 있다. 그 계율에 맞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세상을 지혜롭게 보는 자, 자비로운 자가 되어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이 궁극의 목표이다. 천주교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에겐 평생의 수도와 더불어 금욕적인 삶, 무소유가 원천인 계율이 있다. 그 계율을 실천하고 만물의 창조주인 하느님을 섬기려면 맑은 영혼을 유지해야 하고, 끊임없이 심신을 수련해야 한다. 교회도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계율이 있다. 종교의 계율을 삶 속에서 항상 수련하고, 실천해야 하는 종교계의 성지자들은 그렇게 평생 세속과는 별개의 세상에서 ‘도’를 닦으며 살고 있다.
여성주의에도 알게 모르게 서로간의 계율이 있다. 존중감에 대한 가치, 불평등한 조건에 대한 잣대, 어느 누가 말하지 않아도 여성주의 실천에는 암묵적인 상당히 주관적인 계율이 존재한다. 그것은 한 개인에서부터 각 단체로까지 넘나든다. 각 단체마다 서로 지켰으면 하는 내규나 약속들도 계율이고, 한 여성주의자가 스스로의 자기검열을 통해 만든 여성주의적 기준도 계율이다. 그래서 여성주의자로서 살려면 그리고 또 욕먹지 않으려면 그 많은 계율을 지켜야 하고, 어느 순간에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성인인지, 여성주의자인지… 세속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다. 어느 날 여성주의 논쟁을 하던 친구가 말한다.
“이 판이 얼마나 작은지 알아? 뭐 하나 잘못하면 금방 소문나. ××도 조심해.”
우리는 여성주의 운동을 왜 하는 것일까? 주관적인 여성주의 계율로 잣대를 만드는 행위가 여성주의 운동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어떤 해방과 행복을 찾고, 서로에 대한 존중감을 찾고자했던 여성주의 운동은 지금 현재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상상적 공동체로의 여성주의
: 서로 다른 정치적 올바름과 교조적 시선
일흔이 넘은 할머니를 ‘여성주의자’로 끌어들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아니 과연 여성주의자로 끌어들인다는 표현이 맞는 것인가? 이 말에도 이미 교조적인 나의 여성주의적인 오만함이 담겨있는 건 아닌가? 나는 어느 날, 이 땅의 수많은 빈곤한 나이든 여성인 할머니와 여성주의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사는 다가구주택 반지하방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할머니와 닉네임을 부르며 ‘야, 자’해보는 상상도 해본다. 그러나 또 문득 과연 그게 올바른 것일까라는 의문과 화두가 머리 한쪽을 꽉 채운다. 과연 이러한 실천적 제언으로 할머니들에게 여성주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여성주의적인 문화적 계율은 여성주의 단체뿐 아니라 다른 단체에서도 활용할 정도로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여성주의 영역에서 활동을 하다 세상 밖으로 나가면 가장 먼저 체감하게 되는 것이 호칭과 나이 문화, 배려 문화다. 내가 다른 세계에 있다 온듯한 문화적 이질감, 세상(세속?)의 문화가 왜 그렇게 낯설고, 일방적인지, 답답한 느낌까지 든다. 어느 순간 입에서 탄식이 나온다. 어느덧 여성주의자로의 삶과 그냥 인간 여성으로의 삶이라는 이중의 옷을 입는다. 그 사이의 혼란함. 머리 한쪽에서는 ‘그녀/그를 여성주의자로 끌어들이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하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교조적인 시선과 생각을 하고 있는 자 자신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성주의 삶에 대한 상당히 많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체화되고, 여성주의 상상의 공동체와 세속(?)의 사이에서 질펀하게 고민을 해댄다.
어느 누구는 ‘정치적 올바름’을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은 여성주의적 계율만큼이나 주관적이고, 기준도 제각각이다. 오히려 나는 여성주의적인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도량과 행위와 실천을 말하는 건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여성주의적 정치적 올바름이다, 아니다’의 저울 앞에서 우리는 그 잣대의 기준을 제대로 갖고 있기는 한 것일까?
내가 너무 좋아하는 어느 여성은 소위 ‘쎈’ 성격을 갖고 있는 쉰 살의 여성주의자다. 그녀의 성격은 약간 다혈질에 독선적이지만, 인생의 깊이가 있고, 여성에 대한 애정과 신뢰, 자는 시간을 빼면 인생의 대부분을 여성인권에 전력질주하며 가부장제와 직접 맞서고 행동해온 열혈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의 ‘쎈’ 성격이 가끔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 위에 놓인다. 또 다른 여성은 스폰지같이 성품이 좋은 주관이 뚜렷한 서른 중반의 여성이다. 그녀의 성격이 부처와 같아 화 한번 낸 것을 본 사람도 없고, 항상 웃는 얼굴로 많은 이를 반겨 여성, 여성주의자, 남성 할 것 없이 그녀를 보면 너무 편안하고 좋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여성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바라는 정치적 올바름을 갖고 있는 여성주의자는 누구일까? ‘쎈’ 성격의 여성주의자인가? 아니면, 스폰지같이 성품이 좋은 여성인가? 사람마다 그 개인의 역사를 살며 생겨난 성격, 취향, 경험, 말버릇, 환경의 차이가 있다. 여성주의자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사람마다 잘 맞는 성격이 있고, 취향이 있고, 말버릇이 있다. 그러나 가끔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서, 혹은 서로 경험이나 환경이 달라서 싸우고, 문제가 발생하는 것들이 여성주의로 모두 환원되는 것을 느끼곤 한다. ‘여성주의자가 왜 (성격이) 그래?’, ‘여성주의자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그건 여성주의적인 게 아닌 거 아냐?’ 어떤 여성주의 활동가가 ‘상처와 치유가 여성주의를 잡아먹은 거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서로 성격이 달라서 싸운 걸 여성주의로 환원하면서 여성주의 안에 상처와 치유가 넘쳐난 걸 이렇게 비유한 듯하다.
그 어느 누구도 어떤 잣대로 여성주의적인 정치적 올바름을 누구는 갖고 있고, 누구는 없다고 할 수 없다. 여성주의적인 정치적 올바름은 지금까지의 몫처럼, 스스로 깨달은 만큼 나아가고, 실천하며, 아는 만큼 반성하고 행동하는 각자 스스로만이 그 깊이와 올바름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주의 문화’에 길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여성주의자가 안 되는 것도 아니며, 스스로 여성주의자로 칭하지 않지만 반성차별주의에 대한 생활 실천을 하고 있다면 그 사실 역시도 중요한 것이다. 깨달은 만큼 한 발자국 나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여성주의 대중운동은 가능한가?
약 40년간 진행된 여성주의 운동이 좋은 거라면, 지금쯤 전세계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주의를 사랑하고, 실천하며 더 나누고, 공유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여성주의 공동체를 제외하고는 세상의 수많은 여성들은 여성주의에 대해 모르거나, 여성 마초들의 모임이라고 오독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좋은 것을 내 어머니하고도 많이 나누지 못했고, 친언니들하고도 많이 나누지 못하고 있다. 세대를 지나 지금쯤은 40년 전보다 더 많고 넘쳐야 할 언니들이 있어야 하는데, 언니들은 점점 사라지고, ‘사회’로 진출하며 ‘나도 한때는 그랬지’로 변해버렸다.
미디어는 여성과 여성주의를 교묘하게 배합하며 사회로 진출한 여성을 이미지화하는데, 상사가 여성인 경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메릴 스트립(미란다)이 되어 사악한 여성주의자로 변하게 만들거나, <스타일>의 김혜수(박기자)와 같이 다재다능한 커리어우먼형 여성주의자를 만든다. 이런 커리어우먼형의 여성들이 ‘사회형 여성주의자의 이미지’로 치환된다. 그래서 ‘여성주의자’라는 단어는 반성차별주의자, 성해방운동이라는 본뜻보다는, ‘남성의 권력을 가지려는 여성들’이라는 말뜻으로 대중화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왜곡된 여성주의를 어떻게 다시 환기시키고, 여성주의 대중운동의 초석을 다질 수 있을까?
여성주의 상상의 공동체에 알게 모르게 생긴 주관적 계율과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가 부담이 된 것은 아닐까?
오늘날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여성들과 여성주의를 공유하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여성주의 세대간의 갈등은 화해할 수 없는 것인가?
여성주의와 계급성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반성차별주의 운동인 여성주의 운동이 제2의 반성차별주의 운동인 성노동자 운동을 왜 별개의 것으로 보는가?
일상으로의 여성주의 운동, 우리는 어떤 커다란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머리 속에서 여성주의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펼쳐진다. 성차별이 이 지구상에, 아니, 온 우주에서도 없어지는 그날까지, 여성주의 운동은 아마도 숨을 쉬고 있지 않을까.
다시 한번 힘을 빼고 상상을 해본다.
* 이미지 출처(순서대로)
http://stuff4restaurants.com/blog2/2008/02/12/truely-awfull-metaphors/
http://www.boston.com/bigpicture/2009/03/holi_the_festival_of_colors.html
http://www.flickr.com/photos/camerachick/2894872021/
언니네 채널넷 칼럼 페미백미에 2009년 12월에 김연호님이 기고한 글입니다.
'아이공 칼럼/김연호 칼럼'에 해당되는 글 13건
- 2010/03/12 여성주의 대중운동을 위한 제언, 김연호
- 2010/03/12 뉴미디어로 만나는 뉴장르 공공예술,김연호
- 2009/02/25 함께액션) 우리는 왜 ‘행동주의 길거리 예술 퍼포먼스’를 하였는가! / 2008-06-04 (1)
- 2009/02/25 하바나 블루스, 언어와 이념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 2006-05-19
- 2009/02/25 인권과 민주주의는 어디 있는가! / 2006-05-07
- 2009/02/25 [이프칼럼] 목소리를 높여봐! 한미FTA 어떤 거야?
- 2009/02/25 [이프칼럼] 타자화된 ‘꺼리’-공중파의 시선, 그리고 묵인하는 사회
- 2009/02/25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영상, 예술의 경계 허물어지다
- 2009/02/25 [영화언어컬럼] 뉴미디어 아트의 지형도, 그리고 영화의 지점들
- 2009/02/25 “나는 자율적인 기술 기생충이다” - 슈 리 칭
| 2006/10/25
공공미술은 있는가? 공공미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내 미술영역에서 소개되는 공공미술 전시와 행사에서 나는 사회성과 정치적 맥락을 함께 읽을 수 있는 공공미술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너무나 많은 아젠다가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도시와 시민’이라는 주제를 벗어난 공공미술이 몇 번이나 열렸을까. 영어로 ‘art’로 통일되는 예술과 미술. 예술과 미술은 같은 낱말이지만, 국내에서 미술은 예술의 범주에 속하는 또 다른 문화영역으로 읽혀지곤 한다. 한 문화영역에 갇힌 미술은 개방적이지도, 취향적이지도, 다양하지도 못하다. 관점 없는 공공미술은 얼마나 황량한가. 황량함. 공공미술을 볼 때 느끼는 감정. 그건 진정성도 영혼도 치열함도 느껴지지 않는 화려한 마네킹을 보고 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액티비즘 정신없이 공공미술을 할 수 있을까? 소수자와 약자에게 갖고 있는 편견에 대한 재고 없이 공공미술을 할 수 있을까? 다만, 일.반.적.시.민.을 대상으로 미술작품을 보여주는 것으로 공공미술의 모든 걸 보여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일반적 시민은 누구인가? 서구 중심에서 일어난 1970년대의 해방운동은 그 일반적 시민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부당함과 인권침해를 받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운동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 시기에 수전 레이시는 기존 공공미술의 부폐와 수동성에서 벗어난 뉴장르 공공미술을 새롭게 개념화했다. 행동주의, 여성, 노동, 인권,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관점과 시각으로 조형물이 아닌 행동과 함께 선보이는 것. 공공미술에서 보아왔던 90%의 부족함이 바로 이 지점이다.
자신의 관점과 시각이 없다는 것. 자신만의 장르와 뉴미디어성에 대한 부재. 공공미술가와 얘기했을 때 그가 갖고 있는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편견을 대하곤 깜짝 놀랐었다. 과연 그 시각은 공공미술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앵벌이를 측은하게 보는 시각, 이주노동자를 불쌍하게 보는 시각, 한미FTA저지운동은 운동가의 몫이라 생각하는 시각, 아직도 페미니즘을 하고 있냐는 시각, 성적소수자를 변태로 보고 있는 시각, 아이의 언어를 미성숙함으로 보는 시각. 이 지점들이 빠져있는 공공미술을 보면서, 답답함과 막혀있음과 고여있음이 느껴지면서, 그들만의 영역으로 간주되어지는 미술영역은 나를 감동시키지도, 그렇다고 긍정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서울 뉴미디어 페스티벌은 모든 사람이 출품이 가능하다. 그중에는 전문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백수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지고 있다. 전문 뉴미디어아티스트보다 고등학생의 작업에서 더 뛰어난 독창성을 발견하고, 진정성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꽤 있다. 뉴미디어아트를 하는 전문인은 자신의 영상문체를 발견하려고 하기보다, 유명한 아티스트를 모방하거나, 전자와 기술적인 면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뉴미디어아트로 무엇을 할 것인가? 뉴미디어아트를 왜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자신만의 관점과 시각을 뉴미디어아트로 고찰하고자 하는 지점이 아닐까한다. 뉴미디어라는 기술에 매몰되면, 엔지니어일 뿐이다. 즉, 신기술의 화려함과 호기심에 매혹된 작업은 시간이 지나면 식상해진다. 1970년대 해방운동 시기에 제작된 행동주의 예술가의 작품들은 화려하거나, 질적으로 뛰어난 작품은 아닐지라도, 그들이 갖고 있는 관점의 진정성과 영혼 깃듬의 흔적들이 보는 이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오는 11월 17일부터 25일까지 홍대 앞에서 열릴 서울 뉴미디어 페스티벌은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관점과 시각, 자신만의 장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뉴미디어로 자신의 목소리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미디어, 감성을 요리하다’라는 슬로건은 뉴미디어의 감성을 공유하고자 함이다. 뉴미디어는 예술분야를 공공으로 확대시키고, 수동적 관객에서 능동적 관객으로 전환시키며, 프로슈머라는 확장된 개념의 관객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듯, 뉴미디어로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자신만의 목소리로 자신만의 뉴미디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이것이 뉴미디어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진정한 소통이 아니겠는가.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대표
제6회 서울 뉴미디어 페스티벌 집행위원장
* 월간미술 2006년 10월호에 실린 김연호님의 기고문입니다.
우리는 왜 ‘행동주의 길거리 예술 퍼포먼스’를 하였는가!
- 김홍석 예술은 죽었다
5월 18일 국제 갤러리 앞에서 <인간 말종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이 퍼포먼스는 김홍석의 <밖으로 들어가기>라는 전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해학적으로 풍자하기 위한 행동주의 예술 퍼포먼스였다. 김홍석은 자본주의 비판을 이야기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은 소수자들을 희롱하고, 조롱하기 일색이다. <밖으로 들어가기>의 뉘앙스가 자본주의를 향한 비판이라 하는데, 이 부분이 김홍석이 관객에게 바라는 얄팍한 속임수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홍석은 국제갤러리라는 상업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는 자본주의 예술가이며, 이미 문화자본, 예술자본의 권력계급에 속해있다. 아마도 자신의 작품이 거액으로 거래되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이 전시의 오류와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작가의 말대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데 있어 자본주의가들을 비판하고 있다기보다 그 안에서 억압기제를 갖고 있는 소수자 코드를 사용하고, 소수자를 멸시하는 위험한 발상을 했다는 것.
2. 김홍석이 사용한 소수성에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했을 때,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변론하기보다 회피, 변명, 차단 행위를 하여 책임을 전가했다는 것.
3. <밖으로 들어가기>라는 의도와 다르게 국제 갤러리에서 정말 소수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 국제 갤러리와 담합하여 갤러리 문을 닫았다는 것.
이 전시는 김홍석 스스로가 자본주의 예술가임을 커밍아웃하고,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인간의 야만성을 화이트박스에 그대로 풀어낸 것이다. 즉, 본 전시는 상업화랑인 국제갤러리에서 전시하면서 그 스스로가 자본주의 예술가가 되고 있는 상황을 풀어내고 있기에, 그 안에서 ‘자본주의 비판의식을 읽는다’ 또는 ‘김홍석의 인간의 소수자적 성찰적 메시지’를 읽는다는 것은 오류이며 불가능하다.
오프닝에서 (post 1945)

(문제시된 post 1945

(본 전시의 기획의도)
일단 김홍석의 본 전시는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예술이 죽었다’는 구시대의 헤겔의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행동주의 길거리 예술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은 구시대 발상의 김홍석의 전시가 자본주의 뻥튀기처럼 똑같은 논리로 사람들에게 읽혀질 수 있다는 위험 때문이다. 서구의 어느 시대이건 화이트박스가 갖고 있는 권력은 대단했다.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을 갖고 있는 사람이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예술 안에서 예술자본을 갖고 있는 사람의 권력은 예술의 정신을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밖으로 들어가기>가 나쁜 전시인 것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전시라고 해놓고, 자본주의가들을 비판하기는 커녕, 자본주의 안에서 살고 있는 약자와 소수자들을 대상화하고, 소재화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조롱을 ‘창녀찾기 퍼포먼스’로 현실화한 부분에서 그 야만적 예술의 끝을 보는 듯하다. 우려하는 부분은 자본주의 예술 안에서 수많은 약자와 소수자들을 언제든지 이용가능할 수 있고, 소재화할 수 있다는 씨앗을 세상에 회자 될 만큼 김홍석이라는 공인의 예술가가 뿌렸다는 것이다. 이 전시가 좋은 예술로 미술계에서 인정된다면, 예술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김홍석과 비슷한 논리로 제2의 김홍석이 되어 화이트 박스에서 야만적인 예술행태를 보여줄 것이다.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공식적인 입장과 공개적인 사과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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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길거리 예술 퍼포먼스인 <인간 말종 퍼포먼스>는 김홍석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국제갤러리 앞에서 진행되었다. 약 한 시간동안 약 40여명의 프로슈머적인 행동주의 시민 예술가들이 모여서 행위예술을 진행하였다. 김홍석이 잘나서라기보다, 그 야만성에 놀라서 ‘진짜’와 ‘가짜’ 사이에 감춰진 김홍석의 인권감수성, 젠더감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예술 퍼포먼스였다. 행동주의 시민 예술가가 주체가 되어 진행된 본 퍼포먼스는 김홍석에게 집중하기보다,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의의가 있었다. 게릴라 형식으로 진행한 이 퍼포먼스는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웹2.0의 다양한 과정을 통해 함께 공유하며 진행되었다.

(성명서 낭독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우리들)

(레이가 개작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우리들)

(여지블모의 퍼포먼스를 즐기고 있는 참가자들)

(피켓 나들이를 하고 있는 우리들)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고급 예술가들과 갤러리의 횡포에 반기를 들고, 화이트박스에서 나와 대안 장소에서 낙선전을 진행했던 것처럼,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고급예술에 반기를 들고,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카페와 대안공간 및 길거리에서 진행했던 것처럼, 행동주의 예술가들이 길거리에서 예술을 보여준 것처럼, 우리 역시 행동주의 예술 퍼포먼스로 길거리에서 목소리를 내었다. 어느 시대이든지, 예술 속의 아비투스, 투쟁의 장은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안의 예술 형태가 동시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미 어떤 특권계층의 예술가들만 향유할 수 있다는 예술 논리가 없어진지 오래다. 그 기득권을 놓지 못하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행해지는 예술을 새로운 예술, 작가의 자율권으로 인정하는 틀에 갇힌다면, 그 시대의 예술은 성숙할 수 없다.

(우리의 입장을 막고 있는 국제갤러리)
김홍석의 예술이 화이트박스에서 죽어있음을 공포하였다면, 우리는 길거리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살아있음을 예술로 보여주었다. 우리의 피날레는 김홍석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국제갤러리를 도는 것이었다. 국제갤러리 측에서 문을 닫았다. 그 시각이 오후 2시 30분 정도였다. 우리의 작은 행동과 목소리가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큐레이터가 말했다.
약간의 설전 끝에 우리는 국제 갤러리에 들어가 ‘김홍석을 찾으면 120원을 드립니다’를 진행하였고, 몇 가지 상황이 해프닝처럼 진행되었다.

(작품 post 1945의 금고에 우리는 120원을 넣었다)

(급하게 작품에 손대지 말고, 찍지도 말라고 저지하고 있는 큐레이터)
국제갤러리 측의 큐레이터에게 말했다.
우리 왈: 내가 창녀이니 60만원을 주고, 이 사람이 찾았으니 120만원을 주세요.
큐레이터 왈: 그것은 오프닝 때 퍼포먼스였습니다.
우리 왈: 주지 않을 거면, 저 벽에 붙어있는 저
큐레이터 왈: 작품이기 때문에 손을 댈 수도 뗄 수도 없습니다.
왜 나의 귀에는 이 말이 ‘우리는 인권보다도 작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들릴까.
살아있는 인간을 화이트박스 갤러리에서 살해하고 난도질해 놓고, ‘어떻게 인간을 그렇게 죽일 수가 있느냐고’ 항변하면, 김홍석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인간의 생명보다 나의 예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전시는 인간의 야만성을 비판하기 위해 진행된 퍼포먼스입니다’
더 늦기 전에 김홍석과 김홍석과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작품을 소개한 국제 갤러리의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바이다.

(국제갤러리 안에서 폼잡으며 한장)

(갤러리에서 나와 피날레 장식!)
미디어 X파일 VOL.3
하바나 블루스, 언어와 이념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김연호
(온라인 이프 미디어 칼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하바나 블루스>(베니토 잠브라노 감독)를 보았다.
쿠바에서 이미 <하바나 블루스>를 보고 온 정호현 감독의 추천으로 보게 된 쿠바 영화다. 반미 열풍 중인 남미. 반미와 함께 한 역사를 갖고 있는 쿠바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역풍으로 대안형 체제를 갖고 있기도 하다.
<하바나 블루스>에는 쿠바인의 일상생활이 잘 나타나 있다. 미국과 국교를 단절한 쿠바 역사는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한국과는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체 게바라. 그리고 민중과 함께 이루어낸 민주주의 혁명. 이 역사를 보면서, ‘자주’를 이야기하면서 자주적이지 못한 사고와 이념에 푹 절어있는 한국을 느낀다.
한번쯤은 다른 나라에 구애받지 않고, 민중이 생각한 국가를 만들고, 역사를 만들고, 후세에 남겨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데도, 왜 그런지 우리나라엔 ‘자주’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 쿠바의 행보가 여간 부럽고, 궁금하다.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쿠바민주화법/쿠바자유민주연대법)과 소련 해체, 끊긴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원으로 쿠바농업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유기농법으로 변모하였다. 그래서 많이들 쿠바농업하면, 친환경 농업 혁명을 이야기 한다.
친환경 농업혁명의 메카로 자리 잡은 쿠바.
근데 왜 쿠바인들은 미국으로 밀향을 할까.
<하바나 블루스>를 통해 잠깐 쿠바를 살펴보자.
친환경 농업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이 몸매짱이란다. <하바나 블루스>에는 주인공 루이와 티토를 필두로 탄력있는 구리빛 피부의 인물들이 즐비하게 등장한다. 부유한 국가에서 이만한 몸매를 만들려면, 아마도 엄청난 돈이 지출되어야 할 것이다. 그 탄력있는 몸매로 흥겹게 춤을 춘다. 쿠바를 직접 갔다 온 적은 없으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집집마다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와 자동차를 타도, 길을 걷고 있어도 리듬에 맞춰서 걷고, 운전하고, 얘기하고 한단다. 젊은 여성과 남성들은 수준급으로 음악을 하고, 춤을 추고, 주말만 되면 파티장으로 가는 것이 일상. 자, 여기까지는 꿈만 같은 이야기다. 하루에 8시간이상의 노동으로 지친일상을 보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실상과는 전혀 다른 딴판이 아닐 수 없다.
근데 쿠바인들은 미국으로 또는 유럽으로 밀향한다. 얼마 전 북한에서 탈출(?)한 인민 약 20여명이 미국에 망명신청을 했다. 북한인민이 못 먹고, 굶주리고 있는 까닭이 미국의 경제봉쇄정책과도 관련이 있음에도 국내의 미디어에서는 김정일 탓만 한다.
쿠바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으로 아무리 자급자족하는 농업이라고 해도 가난한 것이다. 티토의 차 시동이 제대로 걸리지 않는 것. 가던 차가 갑자기 멈추는 것. 텔레비전보다는 라디오가 친한 것. 조금 더 맛있고 다양한 음식을 먹고 싶은 것. 조금 더 멋있고, 쿨한 옷을 입고 싶은 것. 핸드폰, 캠코더, 인터넷하는 것이 힘든 것. 미국과 유럽의 자원 약탈로 인해 쿠바를 비롯한 남미는 늘 가난한 생활을 했었다.
현재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반미경제동맹 선언 등을 통해 남미는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국의 힘을 키워나가고 있다. 한국에서 반미한다면 무조건 매국노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남미의 이러한 행보는 민중에게 얼마나 큰 자긍심을 줄까 생각해본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의 가난한 민중과 함께하는 정치는 일부 부르주아에게는 악당으로 취급되지만, 이만한 가치있는 정치가 어디에 또 있을까.
자국민이 아닌 미군을 위해 자국민의 피와 땀이 섞인 평택의 대추리 땅을 미군에게 받치는 정치. 민간인을 시위대라 칭하며, ‘시위대가 군부대를 몽둥이로 때려 군인 여러 명 중상’이라고 쓰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왜 이렇게 밖에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일까. 총 칼 방패로 무장을 한 군부대에 대응하고자 나무로 된 몽둥이로 대추리를 지키고자 한 민간인을 적으로 모는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하비나 블루스>에서 루이가 부르는 노래가사는 단순한 사랑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쿠바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 노래가사가 어찌나 은유적이고, 시같은지 가슴을 울리고 나를 울렸다. <하바나 블루스>의 노래. 자신이 민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en tadas partes
........
영혼의 방랑안에
도시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는 딜라마이고
나와 만나는 그 곳, 그 지역이
바로 나의 땅이다.
너의 땅이며 나의 땅인 것이다.
만약 나의 보호가 필요하다면
난 너의 외투가 되어 줄 것이다
나의 보살핌이 필요하다면
난 너의 둥지가 되어 줄 것이다
그 어느 곳에 있던지 나는 너를 잊지 않고
너와 함께 할 것이다
........
세상의 땅엔 경계들이 있지만
하나의 태양
하나의 달이
너를... 영원히 비쳐줄 것이다
........
어디에 살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야
언어와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면...
<하바나 블루스> 노래를 듣고 싶은 분, 쿠바에 대해 알고싶으신 분 아래의 블로그로
| 인권과 민주주의는 어디 있는가! | ||||||||||||
| - 2006. 5. 6 평택주민 군화발 진압! 인권옹호자 무처별 포획 규탄 기자회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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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경의 폭력적 진압으로 평택 대추리.도두리 일대에서 4일에만 524명이, 5일에는 인권운동가 4명과 기자 3명 등 100여 명이 추가로 연행되었다. 이에 5월 6일 11시 국방부 앞에서 ‘평택주민 군화발 진압! 인권옹호자 무차별 포획 규탄’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서울대책회의'(서울대책회의)는 비가 오는 중에도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재의 평택 대추리는 사실상 ’계엄 상황’이며 군경의 진압행위는 행정대집행이라는 허울을 쓴 ‘군사 작전’으로 규정”하고 군.경에 의해 자행된 폭력사태에 대해 규탄하였다. | ||||||||||||
온라인이프 / 2006-04-20
미디어 X파일 VO1.2
목소리를 높여봐! 한미FTA 어떤 거야?
김연호
(온라인 이프 미디어 칼럼)
서울여성영화제가 화려한 막을 내렸다. 10주년이라는 역사와 함께한 서울여성영화제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여성영화인들이 1년에 한번씩 모이는 ‘계모임’ 같은 느낌이다. 1년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서로 안부를 묻고, 반가워하면서 연대도 하는 이 잔치를 사람들은 즐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근데 이렇게 흥겨운 분위기를 만끽하면서도 머릿속에서 신자유주의, 한미FTA, 스크린쿼터 사수에 대한 궁금증과 자꾸 동참을 해야지만 될 거 같은, 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 기간동안 (사)한독협에서 ‘신자유주의와 독립영화’ 워크숍을 진행했다. 가서 정보를 접하면 혼란스러운 무언가를 확 뚫어줄 거 같았다. 이런 워크숍의 장점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여과 없이 전해준다는 거 아닌가.
나보다 호화로운 삶을 영위한다고 생각했던 유명 배우들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운동을 펼치고, 그들이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농민들의 WTO 투쟁을 이해하고, 한미FTA에 동참하게 한 현 상황의 적나라한 과정이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했다. 워크숍이 열리는 미디액트 대강당에 들어가니, 책 한권 분량의 프린트물을 나눠준다. GATT, FTA, TPA 등 무슨 말의 약자인지도 모를 단어들이 들어있는 상당한 분량의 자료다. 단어나 문서가 ‘논문’ 수준에서 볼 수 있는 최고급 단어들이다. 알아야 운동에도 동참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얘기를 할 터인데... 하면서 워크숍에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한미FTA는 저지해야 하는 것이다.
한미 FTA를 쉽게 설명을 하면, 한국과 미국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무역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용이라는 게 국가간 상품이 아무런 장벽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무역 장벽을 제거한다는 거다. 미국의 돈과 한국의 돈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를 한다는 게 보기에는 그럴 듯 하다.
신자유주의도 마찬가지 아닌가.
보헤미안이 생각나게 하는 ‘자유주의’에 ‘신’이 붙었으니 이만한 단어가 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양의 탈을 쓴 늑대’라 생각하면 딱 맞다. 19세기 제국주의 열강에 휩 쌓인 그 시대에 자본주의와 제국열강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자원을 강탈해 간 것이 ‘자유주의’다. 보호막이 전무했던 나라들은 식민지가 되었고, 보호막이 있던 나라들도 차례차례 제국주의 열강의 희생양이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열 마리의 사슴, 양, 노루, 토끼가 있는 초원에 열 마리의 사자, 호랑이, 하이에나를 풀어놓는 것과 같다.(어느 술자리에서 황철민 감독이 풀어 논 비유)
그렇다면, 한미FTA는 뭘까.
아래의 잔혹동화 같은 내용은 모 방송사의 동물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방송된 것이다. (미디어참세상 안창영 활동가가 김이찬 감독에게 들려준 얘기를 적어봅니다.)
극지방, 평평한 빙판 위에 수 백 마리의 바다사자들이 평화롭게 서로 몸을 맞대고 일광욕을 합니다. 작은 보트에서 두 사람이 빨래방망이를 갖고 내립니다. 그들에 대해 바다사자들은 무감합니다. 두 사람은 바다사자의 바로 앞에 다가가, 한 마리씩 정수리를 내려칩니다. 바다사자는 세 번쯤 맞으면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가 죽습니다. 바로 옆의 바다사자는 사람이 다가가서 동료를 죽일 때, 다시 자리를 잡기 위해 약간 몸을 뒤척여서 다시 편한 자세를 잡을 뿐입니다.
그런 식으로 사냥꾼은 편하게 죽여 나갑니다. 수 백 마리의 바다사자들은 자기 근처에 사냥꾼이 나타날 때, 시선만 줄 뿐 그 살육의 현장을 쳐다만 보고 있습니다. 자신은 고통을 못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냥꾼은 기계적으로 한 마리 한 마리 죽인 다음 그 자리에서 가죽을 천연덕스럽게 벗깁니다. 바로 옆에 많은 바다사자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말입니다. 해가 뉘엿뉘엿한 저녁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다 죽고 두 마리가 남았습니다. 한 사람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한 마리의 정수리를 칩니다. 나머지 한 마리는 역시 영문도 모른 채 천진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봅니다.
한미FTA를 적절하게 비유한 사건이다.
한미FTA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당연히 자본주의적 경쟁력이 없거나, 연약한 상품이나 문화다. 또한 사회제도적으로 가장 취약하거나, 아무런 보호막도 형성할 수 없는 시민들이 제일 먼저 타격을 입는다. 즉, 현재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 여성노동자의 일자리마저도 타격을 입는다는 소리다. 이건 절대 당연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한미FTA를 저지한다고 양극화 현상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국민이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발 벗고 나서서 한미FTA를 체결하려고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오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한미FTA는 한국에는 남는 장사가 아니란다. 남기지도 못할 장사를 하는 건 상도가 아니라는데, 노무현 정권은 국민을 속이며 헛짓을 한다.
나의 궁금증은 이렇게까지 발전되었다.
노무현이 부시를 짝사랑하나.. 영화 <왕의 남자>를 보고 자신이 연산군이라고 비유했는데, 혹시 노무현이 커밍아웃을 한건가.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는데, 그래서 바보가 되었나... 한미FTA에 대한 미국정부 보고서는 나왔어도, 한국정부 보고서는 아직 공개하지 않은 상황인데, 혹시 노무현이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게 아닐까. 외모가 딸려서 쌍꺼풀 수술도 했는데, 부시가 관심도 없어하나... 그래서 한국을 선물로 받치기로 했나.
국민은 대통령과 이혼하고싶다.
부시를 사랑한다면 가라.
국민은 다른 이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
더 이상 망나니와 함께 살 수 없다.
이것이 노무현과 헤어져야 하고, 국민이 탄핵해야하는 이유다.
<한미FTA 관련 사이트>
- 참세상_ http://www.newscham.net/news/list.php?board=news&category2=63
- 범국민운동본부_ http://www.nofta.com/
-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 인터뷰> _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52
1) 노대통령 조급증이 한미FTA 강행
2) 대통령이 격찬한 보고서 "심각합니다"
3) 재경부-삼성에 포위된 현정부가 사회안정망 확보? 안 될 겁니다
4) 한미FTA되면 정동영 대통령 못된다
5) 국회에서 뭔가 해야하는데 열린우리당은 아무 생각없어요
온라인 이프 미디어 칼럼 2006-04-04
타자화된 ‘꺼리’-공중파의 시선, 그리고 묵인하는 사회
김연호
얼마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연출 박상욱)에서 ‘금지된 고민, 10대 동성애-나는 동성애자인가요?’에서 10대의 동성애라는 소재로 방송을 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인터넷을 뒤져보니, 여기저기서 ‘충격’이라는 말이 서슴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충격’이라니, 이 어찌 말도 안되는 감정의 표현들이 올라와져 있는 것일까. 동성애라는 주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양프로에서 시청률을 의식해서 자주 사용되어왔던 소재인데 말이다. 10년전에도 등장했으며, 일년에 최소 5번 이상은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꺼리’소재인 것이다.
공중파의 난점은 ‘시청률’을 의식한다는 데 있다. 이 ‘시청률’이 공중파 프로그램의 질을 저하시키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좋은 프로그램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시청률’은 공중파 방송이 갖고 있는 프로그램의 질을 좌우하기도 한다. 예산이 많이 배정된 프로그램은 당연히 더 풍부한 정보와 자료를 대중에게 제공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공중파의 편향된 예산편성은 시민의 알 권리, 볼 권리, 말할 권리를 제약하는 악제로 작용한다. 연일 도덕성이 의심되는 일부 연예인들이 여성 비하, 장애인 비하, 성적소수자 비하를 연발하는 흥미위주의 오락성 프로그램에 집중적으로 예산이 편성되어 있음을 그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금지된 고민, 10대 동성애-나는 동성애자인가요?’는 교양프로그램이지만 인권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10대 동성애의 문제를 건드린 공중파의 얄팍한 상술이 그대로 눈에 보인다.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문제를 다루면서 그 다루는 솜씨가 여간 쌍스럽지 않다. 지금 현재에만 대두된 문제인 양 다루는 모습이나, 몇 청소년을 따라 다니며 이성애 청소년이랑 연애하는 감정이 똑같다는 식의 이성애 관점으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타자화된 읽기나, 인권에 대한 제대로 된 워크숍 없이 일회성으로 진행된 교사와 학생의 토론시간 등이 알량하게 진행된다. 또한 청소년의 자해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도출하기보다 ‘보여주기’에 그친 꺼리용 소재임이 그대로 드러난다. 1시간동안 진행하면서 보는 시청자로 하여금 ‘충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배경이 과연 ‘10대 동성애자 때문’인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보여진 인권문제를 다루는 관점에 의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인권문제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조심스러우면서도 담는 자의 올바른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러하기에 많은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은 인권문제를 다룰 때 보통 1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제작한다. <송환>(김동원)은 12년이란 시간을, <잊혀진 여전사>(김진열)는 3년이란 시간을 들여 작품을 제작했다. 다른 주제보다 인권을 다루는 문제는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 인터뷰자의 인권침해의 위험성이 생길 경우, 장면을 드러내거나, 인터뷰자의 동의로 상영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인권이 개입된 문제는 쉽게 다룰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이다.
10대 청소년의 동성애라는 소재는 MBC <뉴스투데이>-현장속으로 ‘이반 문화 확산’(2005. 7.13)이라는 테마로 다루어진 적이 있었으며, 올해에도 MBC <시사매거진 2580> ‘왜 동성애인가’(2006.03.05)에서도 나온 이슈이다. MBC <현장속으로> ‘이반문화확산’을 보았던 많은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는 마녀사냥식으로 10대 동성애자 청소년을 다루는 행태에 분괴하며 성명서를 내고, 기자회견까지 했다. 이렇게 인권이 무시된 사회고발성 프로그램은 주류 공중파나 방송국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인권에 대한 고민 없이 방영되는 사회고발성 프로그램은 타자화된 인터뷰자 및 대상자에게 크나큰 상처를 안겨준다. 시청률 경쟁으로 치닫는 미디어 경쟁은 인권은 뒷전이고, 주류 대상, 가부장적 관점으로 다루어진다. 그들이 얘기하는 인권은 사회주류에 편승하는 인권인 것이다. 10년 전만해도 공중파의 사회고발성 프로그램에서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는 공개 커밍아웃을 하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것이 제대로 된 인권을 알리고, 운동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공중파의 허실과 문제를 알고 있기에 많은 활동가들은 공개 커밍아웃을 꺼린다. 공중파에 노출이 되고 나면 데미지나 생명의 위협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공중파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이다. 단지 센세이서널한 이슈로만 다루는 주류 미디어의 행태에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그렇다면 시청자의 관점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미디어에서 인권을 다룰 때 또 다른 중요한 점이 시청자의 관점이기도 하다. 시청자의 관점을 올바른 관점으로 유도하고, 한 관점이 아닌 다양한 관점, 편견 없이 인권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는 미디어가 올바른 미디어라 하겠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을 통해 보도된 '개지옥 사건'(2006.3.12)을 두고 많은 시청자와 누리꾼은 동물학대 사태해결을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거나, 사태수습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인간의 이기에 의해 저질러진 참혹한 광경이었던 것이다.
개지옥 사건과 10대 동성애는 시청자의 관점에서 양극적인 차이점을 띠고 있다. 이 사회고발성 프로그램에서 전자는 네티즌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지고, 후자는 네티즌의 악플과 공중파의 비하파문으로 인권운동가에게 큰 데미지를 안겨준 것이다.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꼭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이유불문한 것이다. 헌법에도 위배되며, 평등사상에도 위배되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편견에 의해 만들어진 주류사상이 중요한가? 아니면 인간의 존엄성이 중요한가? 눈 가리고 아웅식의 일회성 사회고발 프로그램은 당사자에게는 없어도 그만인 가치도 없는 프로그램이다. 동성애의 정당성을 교육하고, 똑같은 국민으로서 이성애자와 똑같은 법적 혜택과 보호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와 관련된 각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장기적인 인권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성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회, 성별이 다르다고 차별받는 사회, 그리고 그것을 묵인하고, 부추기기까지 하며, 폭력을 양상하는 정책은 현실을 외면하는 행태에서 출발한다. 충분히 교육을 통해 편견과 차별을 막을 수 있음에도 노력하지 않고, 실현하려 하지 않는 사회가 창피한 것이다. 인권교육은 일회성으로 끝낼 것이 아니다. 현실과 유리된 도덕과 윤리보다 학생에게 올바른 인식과 관점을 심어줄 수 있는 인권과목이 더 절실히 요구된다. 해결방안이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는 사회와 정책. 소수자에게 이보다 더한 학대는 없다.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영상, 예술의 경계 허물어지다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대표 김연호
1. 들어가기에 앞서
디지털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신조어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어 현대인의 삶의 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기술매체의 변화는 이렇게 일상과 인간의 예술 영역에도 그 영향력을 과시한다. 모 고등학교에서 조를 나누어 영화 한편씩을 제작해오는 것이 미술 숙제로 제시되었었다. 이것은 회화와 조각 등의 전통 미술 영역을 중심으로 가르치던 미술 교육에서 영상에 문을 두드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현재 디지털 문화의 영향력이 일반 대중에게 확산되고, 디지털 캠코더가 텔레비전과 같은 가전제품으로 점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21C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는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가? 글쓰기의 변화에 맞춰 예술에서의 글쓰기 표현양식은 어떤 변모를 보여주고 있는가? 디지털 패러다임은 매력적이고, 호감 가는 애물 항아리(덩어리)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과도기에 놓여 있는 현재, 디지털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인간은 사고의 확장, 감각의 확장까지 예언하고 있으며, 사고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기도 하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던 애니메이션은 디지털의 능력으로 컴퓨터의 손을 빌리게 되어 인간의 수작업보다 더 정교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으며, 발터 벤야민이라는 이론가가 예언한 디지털 복제 기술로 인해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다양한 회화 작품은 인터넷으로 실제 보는 것보다 더 자세하고, 꼼꼼하게 감상 할 수 있기도 하다. 영화 역시 디지털의 능력으로 가상의 세계를 실제보다 더 현실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디지털의 기술력을 논하기보다 디지털이 가져온 예술의 대중화와 디지털로 인한 각 예술 영역의 해체화에 역점을 두려한다. 빌헴 플루셔는 <디지털시대의 글쓰기>에서 문자의 발달과 인쇄술이 인간이 선형적인 사고를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면, 디지털 코드의 하이퍼텍스트는 인간의 선형적 사고를 비선형적 사고로 전환하는데 영향을 준다고 쓰고 있다. 이것은 선형적인 사고로 숨겨져 있던 인간의 감각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술에서 우리의 글쓰기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그리고 변화된 글쓰기는 어떻게 사용가능한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영화에서의 디지털 글쓰기
영화 제작에서 디지털이 가장 파급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부분은 편집과 촬영이다. 비선형적 편집과 컴퓨터와 호응을 하는 디지털 캠코더로 전보다 조금은 더 수월하게 제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디지털 캠코더의 대중화는 전문 영역으로서의 영화를 대중적으로 확대시키고 있다. 영화 장르 중 다큐멘터리는 비디오와 함께 그 역사를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자본주의와 산업의 물결 속에 서 있던 1965년, 소니 사가 자체 개발한 휴대용 비디오 카메라를 미국시장이 시판한 데서 다큐멘터리 비디오는 시작된다. 세계적으로 정치 사회적 격변 시기를 겪고 있던 시기인 만큼 그 변화와 개혁 운동의 개념에서 접근한 게릴라적 다큐멘터리는 역사적 현장을 기록하고 대안과 논쟁의 담론을 작품에서 보여줌으로써 사회를 고발하는 차원의 예술로 자리를 잡는다. 또한 다큐멘터리 비디오는 시네마베리테 스타일이 가지지 못했던 소수 노동력과 장비의 축소화로 인한 기동성으로 현장을 좀더 가까이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최초 독립다큐멘터리 비디오인 <상계동 올림픽>을 필두로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의 수는 급성장하기 시작한다. 다양한 인권과 노동 현장을 포착한 다큐멘터리가 늘어나면서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창구도 생겨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기록 방식 포맷은 8mm, 6mm, VETA, S-VHS, 16mm, 35mm 등 여러 포맷이 있지만 점점 6mm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S-VHS, 8mm 방식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에서 디지털 캠코더는 감독의 글쓰기를 반영하는 도구로 잘 활용되고 있다. 과거 신지식인이 펜과 지면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이념을 호소했었다면, 지금은 영상을 통해 그 사상을 내뱉고 현장에 직접 참여한다. 인문학에 있어서 '영상'의 물결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인문학에서도 '영상'과 접목한 다양한 예술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시대에서 펜의 역할을 자처하는 디지털 캠코더는 지면을 통해 예술문화를 창출했던 과거의 예술문화에 도전을 가한다.
그렇다고 문학과 회화 등 전통예술이 사라질 것이라는 건 섣부른 생각이다. 과거 회화에서 사진과 필름으로 새로운 예술영역이 생겨났지만, 지금도 회화는 여전히 그 자태를 뽐내고 있지 않은가. 다른 점은 각 예술이 크로스 오버된 형태로 새롭게 재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3. 각 문화 영역으로 파장된 글쓰기의 시도, 그 손에 쥐어진 도구 ‘디지털’
음악과 영상이 만난 뮤직비디오(music video), 영상과 문학이 만난 비디오시(Video poem), 영상과 무용이 만난 비디오 퍼포먼스(Video performance), 영상과 미술이 만난 싱글비디오아트(Single Video art), 인터넷과 영상문화가 만난 넷 아트(net art) 등 디지털이 영상에 가져온 영향은 새로운 예술의 도래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디지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 영향력을 과시하며, 글쓰기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영상은 이제 대중의 글쓰기가 되었다. 전문인, 예술인만의 글쓰기 방법이 아닌 것이다. 대중의 영상 글쓰기로 인해 ‘영상’은 각 예술 영역을 해체하고,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실험한다. 이성강 감독의 작품 은 극장과 갤러리를 오가며 상영되었으며, 다양한 미디어 아트 작품은 실험영화 또는 비디오라는 이름으로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와 인디비디오 페스티발에서 상영되었다. 웹에서 구현되는 넷아트 작가들 설은하(seoleuna.com), 장영혜(yhchang.com), 김태엽(taiyup.com), 권형우(movilemutant.com) 등의 웹 아티스트들의 작품 역시 영상물로 극장과 갤러리를 오고간다. 방송이나 인디밴드 락카페 영상물로 제공되었던 인디 뮤직비디오 역시 독립 영화제들인 레스페스트, 서울 뉴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인디비디오페스티벌), 서울 독립영화제, 서울 프린지페스티벌 - 암중모색-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며, 현재 영상이 갖고 있는 다양한 패러다임을 논의하게 한다.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인간의 확장>에서는 미디어가 인간에게 끼치는 그 영향력을 예견한다. 미디어로 퇴화된 인간의 시지각 능력이 되살아나고, 과거에 인간이 선망하던 능력이 조금씩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상으로서의 글쓰기는 그 내용과 방식에 있어서 다양한 패러다임을 보여주면서 확장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조금씩 부각되고 있다.
독립단편영화에도 변화는 있다.
첫 번째는 이미지와 플롯으로 이루어진 단순화된 내러티브의 특징이다.
내러티브 중심의 영화에서 이미지와 컨셉 플롯으로 이루어진 단순화된 내러티브가 보여지고, 필름 독립영화에 비해 빠른 화면 전개가 그 전보다 많이 등장한다. 필름 독립영화가 롱테이크가 많은 반면 디지털 영화는 비교적 빠른 화면 전환과 많은 컷 수, 핸드헬드 기법이 많은 게 특징이다. 다큐멘터리 비디오에서 주로 쓰는 영상기법들이다. 비디오작품 <주자가 고독할 때>(김종국), <라라 라라라>한주희, <매일하루>(최주영), <10년의 셀프초상>(유지숙), <행복한 청소년 건강한 대한민국>(최진성)에서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이미지 화법 중심의 영상기법의 다양화이다.
실험영화가 싱글 비디오아트, 디지털 아트를 싸안으면서 다양한 이미지 화법을 선보이고 있다. 기존 필름 실험영화는 이미지로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방식을 선호하였다. <다우징>(김윤태), <현빈>(강미자), <눈물>(임창재) 등등 기존 필름 실험영화는 상징과 이미지화로 극을 구성하고, 느린 화법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현재 싱글 비디오 아트 계열에서 선보였던 미디어 기법들이 대거‘영상’으로 선보이면서 실험영화는 변화의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 <The tao of 7th train>(이승준), <콩한쪽>(조성주) 등이 그 작품이다.
세 번째는 디지털로 인한 애니메이션의 급성장이다.
독립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화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기존에는 한정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제작된 애니메니션만 소개되었었다.
‘디지털 시기’를 맞아 애니메이션 감독들의 작업 환경은 좀 더 알차게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게 되었고, 그 후 2D 애니메이션이 대거 각 영화제에 선보이면서 ‘애니메이션 열풍’을 낳기도 하였다. 이‘열풍 후 정부와 학교에서 독립 애니메이션을 지원하는 많은 방안이 논의되면서 독립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선보이게 된다. 2D 애니메이션, 3D 애니메이션, 셀 애니메이션, 페인팅 온 글라스 애니메이션, 핀스크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그레이 애니메이션 등의 기법이 제작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립 애니메이션에서 무한한 기법이 선을 보일 것이다.
4. 고급예술의 파괴, 대중이 앞장서다
서울 뉴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의 출품 장르 비율을 살펴보면, 영화/다큐가 47.93%, 미술이 10.69%, 애니메이션이 11.03%, 내가 만드는 장르가 11.72%, 탈장르가 11.03%의 비율로 나타났다. 영화/다큐 분야로는 극영화, 다큐멘터리, 실험영화로 장르를 나눌 수 있다. 미술 분야로 출품한 작품은 싱글채널 비디오아트, 미디어아트로, 내가 만드는 장르에는 영상에세이, 영상만화, 짜 맞추는 이야기, 스톱모션, 극실험 모션그래픽, 액션 환타지 블랙 코미디, 심리극, 드로잉 비디오, 포토에세이, 비디오 퍼포먼스 등으로, 탈장르에는 광고, 뮤직비디오, 비디오포엠, 웹아트, 페이크다큐 등으로 자신의 장르를 피력하고 있었다.
독립영화는 이제 대중이 참여하는 영역으로의 길에 접어들었다. 과거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에서 보여준 제작과 의식으로써의 독립영화의 의미는 현재 많이 퇴색되었다. 그러나 그 의미가 퇴색되었어도, 현재 독립영화는 대중이 그 자리를 메워 가고 있다. 보기조차 민망한 영상물이 쏟아지고, 새로운 영화 문법을 실험해보려는 젊은 혈기로 감독도 이해하지 못할 작품도 대거 영화라고 내놓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한국의 독립영화가 저급해졌다고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상업영화에 진출하려는 과정으로 독립영화를 한다고 손가락질 할 일도 아니다.
독립영화에는 상업영화가 결코 따라 올 수 없는 작품의 미학과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첫 작품에서도 도제 관습 없이, 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영화 코드를 실험할 수 있다는 것, 사회와 정부의 부조리에 대해 노래할 수 있다는 것,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 일인 시스템으로도 영상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 독립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상징적 함의가 있기에 이것을 선택하느냐 마느냐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영상으로 글쓰기는 이제 과거 노트와 펜에 비유된다. 지금은 그 과도기에 있다. 이제 인터넷과 컴퓨터를 매개로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앞에, 호모 사피엔스인 창의적 인간 앞에 ‘영상-디지털’이 중앙에 놓여있다. 디지털은 이제 우리의 글쓰기에서 빠질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참고자료
▶ 디지털 이론서
『디지털 영상예술 코드읽기』,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엮, 2003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빌렘 플루서
▶ 디지털, 뉴미디어아트 관련 시민 참여 영화제 & 영상제 사이트
퍼블릭 엑세스 시민 영상제 http://www.publicaccess.or.kr
네마프 놀01다다 http://www.nemaf.net
인디다큐페스티벌 http://www.sidof.org
레스페스트 http://www.resfest.co.kr
세네프http://www.senef.com
▶ 영상제작 노하우를 알 수 있는 사이트
필름메이커스커뮤니티 http://www.filmmakers.co.kr
계간 [영화언어] 2003년 겨울호
1. 서론 - 뉴미디어 아트의 개념 및 역사적 고찰
2. 뉴미디어 아트의 지형도: 예술성과 상업성, 기술성과 창조의 위기
3. 통합과 변형으로의 뉴미디어 아트 그리고 영화의 지점
김연호 (계간 영화언어, 2003, 겨울호)
1. 서론 - 뉴미디어 아트(New Media art)의 개념 및 역사적 고찰
뉴미디어 아트는 21세기에 들어 더 다양한 지점을 선보이고 있는 예술영역이다. 이 예술은 접점과 융합, 탈경계, 이종교배(hybrid) 등의 특징을 가지며 가장 활발하게 다양한 지점의 예술형태를 선보이고 있다. 초기 미디어 아트는 1920년에 대두되어 1970년대의 대중매체(mass media)였던 책․잡지․신문․만화․포스터․사진․영화․라디오․텔레비전․비디오․컴퓨터가 작가의 작업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의 젊은 작가 역시 실험성과 도전으로 다른 영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미디어 아트는 빛보다 빠른 비트(bit)의 0, 1 binary code로 이루어진 디지털로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뉴미디어 아트의 발전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자리잡고 있는 IT 산업의 부흥에 힘입은바가 크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해외의 뉴미디어 아트의 흐름과 차이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며, 젊은 작가들의 미디어 아트에 대한 관심과 도전 역시 유럽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경향은 아니라고 한다. 한국에서 미디어 아트라는 단어가 미술에서 개념화되고, 자리를 잡기 시작한지 약 8여 년이 지난 역사를 반추해보면, 지금의 미디어아트의 성과는 놀랍기 그지없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이전의 미디어 아트에서 볼 수 없었던 웹아트, 인터렉티브 아트, 가상공간 네트워크, 디지털 아트, 모바일 아트, 디지털 퍼포먼스, (디지털)비디오 아트, 디지털영화 등이 가미된 뉴미디어아트가 해외와 마찬가지로 동시대에 한국에서도 갤러리와 소극장에서 전시되고 있다. 또한 예전의 미디어 아트 역시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과 과학의 접목을 통해 뉴(New)라는 접두사를 선사 받게 되었다. 미디어 아트와 뉴미디어 아트를 나누는 경계선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이분법적인 용어로 결정되고, 그 사용가치와 양에 따라 결정되는 지극히 기술 과학적 방법론에 의존하고 있다. 미디어 아트 작가들은 기술 과학과의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기술지상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르디외와 같은 이론가는 오늘날의 미디어 아트 작가들을 엔지니어로 규정짓기도 한다.
한국에서 미디어 아트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서구의 미디어 아트 시기가 없었던 한국에서 뉴미디어 아트는 경제 성장과 더불어 함께 커나간 예술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뉴미디어 아트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디지털․인터넷(가상공간)․인터렉티브로 축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단언할 수 없다. 지금도 뉴미디어 아트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식의 실험을 통해 다른 장르나 매체를 끊임없이 자기화自己化하며 끌어들이고 있는 장르이기에 쉽게 판단하거나 결론을 낼 수 없다. 한국에미디어 아트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식의 실험을 통해 다른 장르나 매체를 끊임없이 자기화自己化하며 끌어들이고 있는 장르이기에 쉽게
2. 뉴미디어 아트의 지형도: 예술성과 상업성, 기술성과 창조의 위기
마이클 러시Michael Rush는 20세기의 미디어 아트를 개념화하면서 영화와 아방가르드 시네마를 빼놓지 않는다. 매체와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비디오 설치미술, 디지털 아트라는 큰 범주가 있기 이전에 매체예술에서 영화는 오늘날의 미디어 아트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미디어 아트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 미디어 아트의 통합성엔 다양한 문화가 복합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아트는 다양한 장르에 걸맞게 소개되는 여러 지점에서 별개의 코드를 부여받기도 한다. 연예인으로 보자면, 이보다 더 한 엔터테인먼트는 없을 것이다. 이런 멀티 플레이를 하고 있는 미디어 아트를 체계화하고, 정립해 나가려면, 두 가지 관점에 대한 확실한 준거가 필요하다.
첫째는 예술성과 상업성의 관계 코드에 대한 인식의 지점이다.
, 정보는 그 사물에 대한 인식의 기준을 정한다. 오노요코는 한국 대중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이미 <비틀즈> 멤버인 존 레논의 아내라는 정보를 통해 익숙한 코드가 되었다. 즉, 예술가로 인식되기 이전에 대중문화의 정보에 의해 오노요코는 한국 대중에게 호기심, 선망,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대상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 전위예술가로서의 가치를 평가받기 이전에 이슈화로 유명인이 된 오노요코의 개인전 <예스 오노요코전>이 로댕 갤러리에서 전시되었을 때 미술 갤러리 역사상 최고로 많은 관람객 수인 6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대상에 대한 사전 정보는 그녀에게 예술가라는 새로운 인식틀을 한국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가장 큰 메커니즘으로 작용하였다. 벤야민 W. Benjamin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체험은 정보로 변환된다고 한탄한다.ϨϨ͒ɘꘘ͒ɘꘘ͒ɘꘘ͒ɘꘘ
대상-비평-독자의 관계, 작가-대상-텍스트의 관계, 텍스트-비평-독자의 관계 속에서 예술 작품, 예술가, 예술 이론이 탄생된다. 예술 작품은 바로 규정짓기, 자리잡기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미셀 푸코의 이미지와 기호와의 관계에 대한 접근, 피에르 부르디외의 권력의 규칙의 종지부는 ‘인식’이기도 하다.
예술성과 상업성에 대한 문화권력 메커니즘은 자본과 결부된다.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공장에서 출고된 창조물은 자본과의 유착 관계에 의해 상품으로 인식하게 되고, 예술가에 의한 창조물은 예술의 장(場) 메커니즘에 따라 예술 작품으로 승화된다. 팝아트는 이 법칙을 역이용하여 대중코드를 창조물로 전환시켜, 예술 작품에 대한 인식의 메커니즘을 확장시킨 조류라 할 수 있다. 나비아트센터에서 열린 <속임과 환상으로 보는 미술 Fake & Fantasy>전은 작품에 대한 정보가 없는 관람객에게 상품과 예술품의 기준을 관람객에게 화두로 제시하는 그야말로 속임과 환상에 관한 전시이다. 대중이 상품과 예술품을 구별하는 기준은 그 창조물에 대한 정보로, 이 전시는 대상에 대한 판단틀이 어떻게 제공됐는가에 따라 인식이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하는 전시라 할 수 있다.
즉, 정보는 그 사물에 대한 인식의 기준을 정한다. 오노요코는 한국 대중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이미 <비틀즈> 멤버인 존 레논의 아내라는 정보를 통해 익숙한 코드가 되었다. 즉, 예술가로 인식되기 이전에 대중문화의 정보에 의해 오노요코는 한국 대중에게 호기심, 선망,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대상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 전위예술가로서의 가치를 평가받기 이전에 이슈화로 유명인이 된 오노요코의 개인전 <예스 오노요코전>1)이 로댕 갤러리에서 전시되었을 때 미술 갤러리 역사상 최고로 많은 관람객 수인 6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대상에 대한 사전 정보는 그녀에게 예술가라는 새로운 인식틀을 한국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가장 큰 메커니즘으로 작용하였다. 벤야민 W. Benjamin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체험은 정보로 변환된다고 한탄한다.
한국의 뉴미디어 아트를 살펴보자면,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유통 경로가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에 대중과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부재인 상황이다.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유통구조를 갖고 있는데 반해, 뉴미디어 아트는 영역의 방대함과는 다르게 유통 구조나 시장이 없다. 즉, 뉴미디어 아트엔 작가의 생산은 있지만, 소비가 없다는 얘기이다. 작가의 뛰어난 기술력과 창조성만으로 ‘예술작품’이 창작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유통라인이나 정보력에서도 능력이 발휘되어야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스탠리 아로노비츠는 예술작품 자체의 상품화, 예술이 일정 대중을 관객으로 확보하지 않으면 주변화되고마는 규칙에 스스로를 종속시켜야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문제가 된다2)고 말하고 있다.
둘째는 과학의 기술성에 직면한 뉴미디어 아트의 창조성과 위기의 지점이다.
뉴미디어 아트의 특징인 디지털․웹(가상공간)․인터액티브는 과학의 기술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초기 백남준이 텔레비전의 일방향성에 반기를 들고, 비디오아트, 위성중계예술, 레이져예술 등의 쌍방향 예술을 선보였지만, 이 역시 과학의 테크놀로지에 의존하고 있으면서 미디어 문화가 만들어 낸 상업적인 루트를 예술의 형식에 응용한 것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는 대중 코드인 뮤직 비디오 형식을 차용한 작품으로 과학기술이 낳은 문화산업 코드를 예술 안에서 재생산하면서 미술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앤디 워홀 Andy Warhol은 작품에 미디어 방법을 내재화시킴으로써 기계적 복제의 전 구조를 물신화3)한다고 밝힌바 있다.
이제 예술은 테크놀로지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생산해낸 문화산업 구조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첫 번째 목표는 자본의 잉여가치를 내는 것이다. 자본이나 산업과 떨어져서는 과학기술은 발달할 수 없다. 여기서 탈자본을 지향하면서, 산업화된 첨단 과학기술을 예술적 창조성으로 직결시켜야 하는 예술가들 역시 일반대중과 마찬가지로 소비자가 된 것이다. 3D 프로그램 마야Maya, 어도비 프리미어Adobe Premier, 애플 파이널 컷 프로Apple Final Cut Pro, 미디어500Media500 등 기술자들이 발명한 프로그램을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엔지니어만이 아니라 미디어아트 작가들도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툴tool을 익히고, 배운다.
조지 루카스 George Lucas의 디지털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Starwars Episode>, 워쇼스키 Wachowski 형제의 <매트릭스 Matrix>는 작가주의를 떠나 영화산업에서 자본의 잉여가치를 재생산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영화에 응용한 케이스이다. 예술영화 감독인 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영국여인과 공작 L'Anglaise et le Duc>, 라스 폰 트리에 Lars Von Trier <백치들 Idioterne>의 디지털 쓰임은 영화 필름 포맷의 헤게모니가 필름 메커니즘에서 디지털로 전환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일례이다. 매체 예술의 중심인 영화에서도 디지털 이데올로기인 테크놀로지의 마력은 피해갈 수 없다. 즉 기술결정주의는 어느 한 부분에만 집약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모든 예술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최신 기술을 누가 먼저 응용을 하느냐에 따라 예술의 창조성도 부각된다. 이제는 아날로그 도구가 아닌 디지털의 기술 정보를 제일 먼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느냐’에 따라 예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법칙4)을 만들어 낸다.
독자적인 유통 구조를 갖고 있지 않은 뉴미디어 아트에 웹은 작가의 작품을 전세계 대중(네티즌)에게 보여줄 수 있는 대체 저장고이자, 가상공간이다. 인터넷의 인터페이스Interface와 네트워킹Networking은 사이버 문화를 창출하면서 가상공간의 재고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난 웹(World Wide Web)은 무한 공간이면서, 제약을 초월하고, 더불어 웹의 하이퍼링크는 정보의 복합적인 중층 구조를 실시간에 환원하면서 즉시성과 신속성을 갖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웹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인식의 충돌은 물리적 공간이 아닌 가상현실 시뮬라시옹Simulation 세계, 즉 ‘재현’에 있다. 이전 물리적 공간에서의 실재에서 파생실재로의 사뮬라크르Simulacres가 아닌 바이너리 디지트 binary digit라는 형체가 없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구현된 시뮬라시옹 세계가 바로 웹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데리다 Jacques Derrida는 서구사상이 문자의 힘에도 불구하고, 음성언어를 추구하였고, 사이버 스페이스 Cyber Space의 프로그람programme5)을 통해 서기언어(書記言語) 에크리튀르Ecruture6)이 구현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음성언어 역시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코드화된다. 웹에서 구현되는 모든 기호와 문자와 이미지는 디지털이라는 문자언어로 전환되면서, 인간의 물질적 공간을 가상복제7)하고, 현실réalité 세계에서 구현하지 못했던 상상의 세계까지도 디지털 일루션인 가상현실réalité virtuelle로 만들어 낸다. 팝아트가 복제 기술을 끌어들였다면, 웹은 가상복제를 실현하고 있다. 웹의 특성은 벤야민의 복제에 의한 고급예술의 붕괴나 맥루한의 미디어 확장에 의한 다원주의, 지구촌화에 더 접근하며, 예술이 갖고 있던 기의의 저의마저 붕괴해버리고 만다. 웹 갤러리, 웹 아트, 라이브 웹 캐스팅 퍼포먼스8) 등 웹을 이용한 작품은 소장으로써의 가치나 영구적인 보관이 아닌, 일회성, 반영구적인 특징을 지닌다. 작품의 완성도가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되거나, 라이브 웹 캐스팅 퍼포먼스처럼 일회성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공간으로 이루어지는 라이브 웹 캐스팅 퍼포먼스같은 형식이다. 제2회 서울 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2002)에서도 인터액티브 형식의 뉴미디어 아트 작품이 대거 소개되었으며, 대안공간 풀 갤러리에서 전시된 김민, 최민의 <노래방 프로젝트 Nr.1- (관람자의 독재)>(2003),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 갤러리에서 전시된 <The.Station>(2003), 창동 미술 스튜디오에서 개최되는 안드레아스 쾨프닉 <U-Boot Project>(2004) 역시 독일의 쾰른 아트페어(Art cologne)와 한국에서 동시에 개최되는 인터넷 망을 이용한 인터액티브 아트이다.ዀϨϨ͒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The'õt͡ʰ7ʰ7>(2003), 창동 미술 스튜디오에서 개최되는 안드레아스 쾨프닉 <U-Boot Project>(2004) 역시 독일의 쾰른 아트페어(Art cologne)와 한국에서 동시에 개최되는 인터넷 망을 이용한 인터액티브 아트이다.
3. 통합과 변형으로의 뉴미디어 아트 그리고 영화의 지점
빠르게 변모하고 있는 산업화된 환경에서 뉴미디어 아트는 스폰지처럼 모든 것을 흡수하고 체화(體化)하고 있다. 뉴미디어 아트라는 개념으로 오늘날의 영상 예술은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 뉴미디어 아트 용어로 살펴본다면, 영화는 뉴미디어 아트의 한 영역에 귀속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뉴미디어 아트에 대한 자료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뉴미디어 아트와 영화간의 관계를 정립한 어떠한 이론서도 없는 실정이다. 그것은 미디어 아트의 역사가 짧고, 1960년대의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간의 혼란기에 이루어진 미디어아트에 대한 방대한 역사와 비평이 당시 한국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미디어 아트〈미술’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채 들어온 미디어 아트는 Media라는 기호가 갖고 있는 서구의 Media art의 유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영화이고, 미디어 아트는 미술의 한 영역으로 인식될 뿐이다.
미디어아트와의 인접성이 있음에도 영화는 개념과 영역의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문화란 문화전파와 통합, 접변을 통해 관계가 정립되고, 확장된다. 영화에서는 미디어 아트에 대한 연구를 비가치적인 생산활동으로 보거나 장(場)외의 연구로 보고 있다. 고전으로 명명되는 한국에 번역된 영화 서적이나 이론서에서 미술이나 미디어아트와의 역사적 연관성을 깊게 써내려 간 영화 서적이 없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 ‘인상주의 화가들이 아방가르드 영화를 제작했다’ 정도 - 그러나 영화의 탄생이 미술에 주는 충격이 컸던지 미술에서는 사진․영화의 탄생에 귀추하며 연관된 화풍이나 연관성에 대해 탐구한다.
자코모 발라 Balla, Giacomo9)의 <줄에 묶인 개의 동학 Dynamism of a Dog on a Leash>(1912), 루이지 루솔로 Russolo, Luigi10), <자동의 역동성 Dynamism of an Automobile>(1912-13),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ude Descending a Staircase>(1912)와 같은 아방가르드 Avant-garde 예술인 미래주의나 초현실주의 화법에서 영화 장치와 요소의 연관성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안달루시안의 개>, <황금시대>의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시인의 피>(1930) <비련 LꡑEternel retour>(1943) <미녀와 야수 La Belle et la Bte>(1945) <오르페우스의 유언>(1960)의 장 콕토 Jean Cocteau, <이성으로 회귀 Return to Reason>(1923), <Emak Bakia>(1926), <불가사리 Lꡑtoile de mer>(1928)의 만 레이 Man Ray 등 1920년대 후반의 아방가르드 계열의 예술가들은 영화를 제작한 영화 감독이자 매스 미디어뿐만 아니라 모든 재료와 방법을 차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미디어 아트 작가이기도 하다.
이후 1960년대 전위예술가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던 플럭서스 운동은 멀티예술, 문화의 크로스오버 등 인터미디어를 지향하며 전위예술,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예술운동을 펼쳤다. 이 당시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약 40여 편의 플럭서스 영화를 제작하였다. 백남준은 <영화를 위한 선 Zen for Film>(1962-1964)을 제작하였으며, 피터무어는 <얼굴을 위해 사라지는 음악 Disappearing Music for Face>(1966), 오노요코는 <눈 깜박임 Eyeblink>(1961), <번호 1 No.1>(1964), <자유 Freedom>(1970), 플럭서스의 창시자 조지 마키우나스는 <10피트 10 Feet>(1966)을 제작하였다.11) 플럭서스 영화는 이후 장뤽 고다르 같은 누벨바그 감독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이전부터 뉴미디어 아트는 미술 한 영역만의 흐름이 아니라 문화예술의 조류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뉴미디어 아트를 미술의 흐름만으로 간주하는 착오를 범한다. 그것은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예술조류에 대한 과도기 없이 정립된 채 들어온 예술의 수많은 기조와 운동이 문화 경계를 더 국견하게 만들며, 위계화해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의 뉴미디어 아트는 아직까지 몸은 모더니즘인데, 옷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지향한다. 이러한 본능적인 장의 보호주의는 분리된 예술의 장이 쉽게 섞일 수 없게 한다.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 토드 기틀린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더니즘은 통일성을 찢어버렸고,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 찢겨진 조각들을 즐겨왔다. 관점의 다중성이라 할 수 있는 모더니즘은 목소리의 완전한 분산이라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단초가 된다. 모더니즘의 콜라주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장르 통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12)
뉴미디어는 문화적 모더니즘이 주변부로 전락시킨 다양한 문화적 틀을 수용한다. 뉴미디어는 노동, 인종, 여성, 소수문화, 동성애 등 포스트 모더니즘 시기에 일어난 다양한 인권․소수․대안문화 운동의 표현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광화문 촛불 집회 같은 퍼블릭 게릴라 전략에도 가장 많이 이용되는 매체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장르 통합은 뉴미디어 아트에 무한한 가능성을 준다.
그러나 영화가 쉽게 뉴미디어 아트에 합류할 수 없는 것은, 첫 번째는 독자적으로 형성된 100년의 역사가 있기에 그 정통성이 쉽게 해체될 수 없을 것이고, 두 번째는 다른 예술문화의 특성과 섞일 수 없는 ‘상업’ 영화만의 특수한 장이 커다란 문화산업이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앞으로 유통구조까지 디지털화되고, 디지털 위성 시스템으로 필름이 아닌 디지털 코드화된 영화가 위성망으로 전세계 극장에 전송되는 시대가 도래한다.
뉴미디어 아트의 미래 전망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을 해본다. 지금 현재 인터액티브 아트가 하듯이 영화가 스크린에서 나오거나, 인터액티브 퍼포먼스가 위성망을 통해 전세계 극장에서 전시되고, 디지털 멀티미디어 콘서트가 영화와 똑같이 전세계 극장에서 공연될 수 있을까. 자본구조와 직결되어 이 뉴미디어 아트가 이윤을 남긴다면, 영화는 새로운 모색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극장에서 이벤트 성으로 이루어진 ‘<헤드윅>과 콘서트’, ‘<록키호러픽쳐쇼>와 뮤지컬’이 아닌 아마도 상업 뉴미디어 아트인 채로 말이다.
그림 주석.
1. Matthew Barney, 크리매스터 CREMASTER 2 1999
2. Marcel Duchamp, 샘 Fountain, 1917
3. Pipilotti Rist, 픽켈포르노 Pickelporno, 1992
4. Eric Rohmer, 영국여인과 공작 L'anglaise et le Duc, 2001
5. The.Station전, 기획: 김혜란, 전시 작가: 김정한 박성선 이수정 이현진 조경란 조은지 최영준 최종범, 전시공간: 아트스페이스 휴(HUE), 2003
6. Giacomo Balla, 줄에 묶인 개의 동학 Dynamism of a Dog on a Leash C. 1912
7. Ono Yoko, 자유 Freedom, 1970
2005-09-10
“나는 자율적인 기술 기생충이다”
비디오를 든 행동주의 버지니아 울프:
슈 리 칭 Shu Lea Cheang
김연호
여성. 이민자. 동성애자. 유색인종. 노동자. 주변부. 섹슈얼리티. 자기만의 방을 끝없이 탐구하는 슈리칭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나열되는 단어들이다. 슈리칭은 “경계가 불분명하고, 자유로운 주제를 선택한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갖고 있을 자기만의 방. 당신도 갖고 있을 그 방. 당신은 얼마나 자주 환기시켜주는가? 자기만의 방을 갖고 있다 해도 그 방을 쓰지 않는다면, 거미집과 곰팡이로 온통 병들어 폐가가 될 것이다. 슈리칭은 바다를 항해하는 탐험가마냥 자기의 방을 끝없이 드나든다. 그녀는 25년 동안 자기만의 방을 드나들면서 영화, 비디오, 설치, 넷 아트 등 다양한 영역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을 터득하고, 그릇을 만들어내는 데도 열심인 사람이다. 2000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여성이 만든 하드코어 포르노 영화 <I.K.U>로 영화인과 관객에게 열광적인 호응을 얻게 되면서 독립영화의 이단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1999년까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한 웹 프로젝트 <브래든 Bradon>으로 미술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뉴 미디어 아트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은 뚝심과 자유로움과 재치가 넘친다. 또한 25년의 깊은 맛을 참신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아는 예술가다. 2004년 8월에 열리는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슈리칭의 영화들이 상영된다. 그녀의 작품은 한 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삶의 체험에서 비롯된 넓고 깊은 글쓰기에서 기반 된다.
1954년 대만에서 태어난 슈리칭은 1979년 뉴욕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며 독립영화를 시작하였다. 미국에서 비디오카메라의 대중화가 일었던 1980년대 무렵, 그녀는 미국 휘트니 미술관에서 <컬러 스킴스 Color Schemes>(1989)을 전시한다. <컬러 스킴스>은 다문화 사회인 미국이 내세운 인종 동화 정책의 허실을 비판한 그녀의 첫 비디오 설치전이다.
1980년대는 미국에서도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비디오로 작품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비디오 아티스트인 샤디베닝, 마사 로즐러, 피필로티 리스트, 바바라 해머, 린다 벤글리스 등이 여성적 글쓰기, 새로운 영상 문법 등을 실험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비디오는 영상과 미디어의 시스템에서 주변부에 머물던 여성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펜이 되었다. 영화 역시 남성의 시스템 하에 있던 영역이었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 시스템, 남성적 양식, 남성적 화법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디오의 출현으로 여성은 그 시스템 안에 있지 않아도 영화, 영상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비디오로 제작된 작품에서 새로운 여성적 글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 많은 것도 이 이유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새로운 글쓰기를 두려워했다면 아마도 오늘날까지 회자되지 않았을 것처럼 많은 여성 작가들은 비디오로 행동하는 여성주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비디오로 제작된 많은 여성주의 작품을 미디어나 평론가가 외면한다. 여성주의 감독과 작가를 산업시스템에 들어앉은 상업영화에서 찾는 것보다 독립영화와 작가영화에서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오늘날의 상업영화 시스템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남성 권력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리칭이 비디오를 선택한 것은 시대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마초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그 시스템에서 아등바등하기에는 시간과 정력이 너무 아깝다. 비디오로 작업한 슈리칭의 작품에는 그녀만의 재치, 자유, 유머가 넘실넘실 춤을 춘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제작하는 그 기간 동안 슈리칭의 기분 상태가 그대로 전달된다. 연작 시리즈인 레즈비언 섹슈얼리티 비디오 <섹스 물고기 Sex Fish>, <섹스 볼Sex Bowl>, <손가락과 키스 Fingers and Kisses>, <집으로 Coming Home> 등은 여성 애로티시즘, 동성애 애로티시즘을 그린 작품들로 도발이라고 칭하는 성에 대한 기존 강박관념에 살짝 미소를 띄워준다.
섹슈얼리티와 애로티시즘에 관한 그녀의 또 다른 영화인 <I.K.U> 역시 감춰진 여성의 상상의 섹슈얼리티를 공상과학 포르노라는 장르로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영된 <프래쉬 킬 Fresh Kill>에 이은 두 번째 독립 영화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고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성에 대한 대담함과 솔직함이 자유로운 SF 상상력으로 펼쳐진 <I.K.U>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SF <블레이드 러너>의 장치를 차용한다. 타이렐사는 게놈 주식회사로, 레플리컨의 추격전은 포르노왕국의 건설을 위해 최고의 섹스 데이터를 수집하는 I.K.U 코더인 '레이코' 형태로 변형된다. 게놈 주식회사는 IKU 데이터베이스를 네트워크로 전송하고, IKU 칩은 자판기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하여 언제 어디서든 이 칩을 휴대폰으로 연결하면 뇌파 자극을 통해 섹스의 흥분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신제품을 선보인다. 즉 미래형 섹스 기구다. 게놈 주식회사에서 파견된 여러 명의 IKU 코더들은 오르가즘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이성, 동성, 트리플, SM 등 다양한 섹스를 하며 섹스케이프를 돌아다닌다. 제도 내 영화의 검열을 조롱하는 모자이크 CG, 질 시점 쇼트, IKU 코더들의 오른팔이 페니스로 변형되는 장면 등 숨겨진 상상력, 보이지 않는 시점까지 디지털 화법으로 보여준다. 그녀가 작업하는 코드 중 하나인 섹슈얼리티는 여성, 동성애인 그녀의 정체성에 대한 드러내기이며, 남성 사회에서 회두되지 않는 여성의 성에 대한 토로이다. 영화 장치로 풀어내는 그녀의 섹슈얼리티는 젠더와 섹스로의 여성의 경계를 무경계로 확장시킨다. 여성이 남성이 될 수도 있는, 역할 구분이 따로 있지 않은 젠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섹스가 빚어낸 관념들을 다양한 이야기 구조로 풀어낸다. 남성 사회가 만들어 낸 경계에 갇혀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작품은 난해할 수 있다. 그러나 경계의 끈을 조금만 느슨하게 푼 채 그 세계를 들여다보면 섹슈얼리티로 풀어내는 그녀가 하는 이야기의 심지에 닿을 수 있다. 이 작품이 섹스에 관한 은밀한 욕망을 풀어낸 작품이라면, <욕망의 들뜬 대상들 Those Fluttering Objects of Desire>은 젠더에서 비롯되는 성의 구분과 편견에 관한 에세이이다.
<욕망의 들뜬 대상들>은 21명의 다양한 인종의 여성 작가들과 함께 인종과 성에 관한 관념을 풀어낸 비디오 설치 작품이다. <컬러 스킴스>와 주제에서 상통하는 이 작품은 서구 사회에서 인종 동화 정책으로 소수와 주변부에 식민지적 검열과 복종이 암묵적으로 통용되고 있음을 비판한다. 여성, 인종, 이민자라는 그녀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코드들이 여성 작가들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샐리의 애교점 Sally's Beauty Spot>, <우양의 간계> 등으로 한국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해외교포 헬렌 리도 참여한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관객과의 대화 화법은 기존 영화에서 보이는 내레이션과는 차별적이다. 또한 연극에서의 방백이나 독백과는 다른 화법을 들려준다.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는 관객에게 대답을 강요하지도, 관객에게 이해를 촉구하는 강한 메시지도 아닌 옛 어머니들이 풀어내는 넋과 비슷하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동화되어 침잠해 있던 단어들이 나풀거리며 머릿속을 휘이 젓고 다닌다. 내가 주변부에 있음을 자각하고 깨닫는 순간 세상은 너무나 다르게 보인다. 그 세상을 알기까지 무수히 많은 문을 통과하고, 벽을 쳐내야 한다. 그 과정을 거친 여성의 목소리이기에 나긋하지만 울림이 있다. <욕망의 들뜬 대상들>에서 펼쳐지는 21명의 목소리는 바로 ‘나’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유럽, 미국,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는 슈리칭은 뉴 미디어 방랑자답게 불특정 국적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미국, 일본, 대만, 한국, 중국, 영국 등 그녀를 소개하는 사이트마다 그녀의 국적이 모두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그 만큼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출생이나 활동무대가 아니라 급진적인 액티비즘일 뿐이다. 현재 그녀가 급진적인 액티비스트로서 두드러지게 활동하는 분야는 넷 아트이다. 1995년부터 시작한 인터넷을 매개로 하는 넷 아트 net art에서 그녀는 이전 영상과 설치에서 보여주었던 급진적인 성향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1970~80년대 서구에서 불었던 비디오 매체의 특징에 덧붙여 넷 아트는 전 세계와의 상호 작용성을 갖는 전자지구촌을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오늘날 많은 미디어 작가들이 선호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녀가 1995년부터 웹 아트 작업을 시작을 한 것은 어느 한 시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범 시공간으로 확대해서 활동할 수 있는 넷 아트의 장점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뉴미디어 예술가들을 “자율적인 기술 기생충(technological parasite)”이라고 명하며, “작가들은 기생충으로 변화하는 기술의 시스템에 들어가 같은 언어와 같은 부품을 쓰지만, 전혀 다른 목적의 것들을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거대 미디어에 대항하고자 하는 슈리칭과 같은 급진적 액티비스트에게는 기술지상주의자라고 할지라도 그 쓰임이 거대 미디어로 인해 숨겨진 진실이나 왜곡되어 전달되는 수많은 사건들을 드러낼 수 있음에 주저하지 않는다.
기존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업.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거대 권력이 감추려하는 진실을 대중에게 알려주는 작업일 뿐이다. 작년에 전시한 넷 아트 <Burn>(2003, http://burn.worldofprojects.info)도 래디컬 행동주의 작품 중 하나이다. 불법 CD와 DVD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들어오자 방콕 및 아시아 당국들이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불법 CD와 DVD를 불태웠다. 이 일례는 미국이 제국주의 아래 아시아에 가하는 WTO 압력과 세계 무역의 불평등 조약이 빚고 있는 한 사례일 뿐이다. <I.K.U>의 넷 아트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가상 SF 현실로 오늘날을 비판한 <Garlic Rich-air 2030>(2003) 역시 급진적인 슈리칭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한 <Garlic Rich-air 2030>(2003, http://garlic03.worldofprojects.info/)은 마늘이 2030년에 대체 에너지로 급부상하여 마늘 생산과 유통으로 인해 빚어지는 현상을 가상현실로 보여주며 오늘날 석유로 빚어진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한다. 미래에도 계속 반복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신자유주의의 가면 아래 있는 시장 제국주의적 발상은 전 세계를 불평등한 시장 메커니즘의 쳇바퀴로 돌려놓는다. 이러한 시장 경제 체제가 지속되는 한 전 세계적의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004에서 슈리칭의 작가전이 8월 21일부터 29일까지 열린다. 그리고 그녀가 지난 25년 동안 활동했던 작업 세계를 8월 27일에 직접 강연하기도 한다. 독립영화, 비디오, 설치, 필름, 넷 등 다양한 영역을 오가며 자유로운 주제로 그녀의 목소리를 전달했던 시간들을 돌이키며 말이다. 여성의 권익과 인권만을 주장하는 여성주의는 이미 여성주의가 아니다. 여성의 목소리로 부당한 사회 정치를 내지를 때, 기존 남성의 글쓰기와는 차별화된 여성의 글쓰기를 고집할 때, 행동하는 여성으로서 소수의 문화와 인권을 대변할 때, 진정한 여성주의 액티비즘이 실현된다. 슈리칭이 작품을 통해 내지른 목소리는 이 모든 것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작품에서 뿜어 나오는 힘 있는 아우라는 우리의 생활양식과 편견을 되새김질하게 한다. 글을 쓰는 방식은 너무나 많다. 기술 기생충이 되어 기술을 양산해내는 자본 경제체제를 갉아먹는 행위를 한다는 것. 기존 질서를 혼란하게 하는 적색분자가 된다는 것. 패권주의 교육으로 물든 환경에 소금을 뿌려주는 것. 발을 담그면 그로부터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다. 비디오는 내 옆에 있고, 인터넷은 언제 어디서든지 접속할 수 있다. 만지는 순간 당신은 버지니아 울프가 될 수도, 버틀러가 될 수도, 샤디 베닝이 될 수도 있다. 시작이 반이라 했다. 작품을 통해 슈리칭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통해 슈리칭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그대라면, 당신도 기술 기생충으로 살아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